노동력 모자란데, 주4일제 파격 실험…독일기업 45곳의 역발상
1일(현지시간)부터 독일의 45개 기업이 주4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임금 수준은 유지하면서 하루를 더 쉬는 방식이다. 노동력 부족과 임금 상승으로 역성장의 늪에 빠진 독일의 경제 상황에서 활로를 찾려는 시도다. “직관에 어긋나는 역발상적 접근이지만, 생산성 향상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도이체벨레·DW)는 평과 “덜 일하며 번영을 이룬 사례는 없다”, “독일 경제에 재앙”이라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과 DW·유로뉴스 등은 이들 독일 기업들의 파격적인 실험을 소개했다. 45개 기업은 직원들에게 매주 1일의 휴무를 추가하고, 급여는 이전과 동일하게 지급하는 주4일 근무제의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은 이 제도를 6개월간 운영하며, 생산성·업무 효율성 등의 향상도를 측정하기로 했다.
이번 실험은 독일의 경영 컨설팅 회사 인프라프레노어와 뉴질랜드의 비영리 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이 주도했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인프라프레노어에 따르면, 참여 기업의 54%가 직원 50명 미만의 중소업체다. 정보기술 분야(14%), 컨설팅 회사(12%), 소매 및 요식업 부문(11%), 부동산 및 컨설팅 회사(10%) 순이다.
獨, 지난해 -0.3% 역성장…노동력 부족 원인
독일은 지난해 -0.3% 역성장을 기록하는 등 경기 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독일 상공회의소(DIHK)에 따르면, 80%가 넘는 기업에서 수천명의 결원이 생겼다. 이로 인한 손실리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2%가 넘는 900억 유로(약 128조원)로 추정된다.
노동력 부족은 현직 근로자에 업무 쏠림으로 이어져, 임금인상 요구와 '번아웃' 등도 야기한다. 실제로 독일 열차 운전사들은 임금 삭감 없이 주당 근무시간을 38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으로 요구하며 파업 중이다. 건설 노조 소속 근로자 93만 명은 임금 2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이같은 임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면 고물가·고금리 추세가 가팔라져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직 근로자의 번아웃도 심각한 수준이다. 독일 건강보험회사 DAK는 지난해 독일 근로자의 질병 관련 평균 병가 일수는 20일이었다. 제약회사협회(VFA)는 병가로 인한 독일의 전체 실질소득 손실은 260억 유로(약 37조500억원)로, 국가 경제 생산량의 0.8%포인트 감소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노동 생산성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독일연방은행의 데이터에 따르면 독일의 생산성은 2017년 11월 105.2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독일의 생산성은 95.8로, 영국(102.1)·프랑스(99.1)보다 낮았다.
근로자·기업 "정부, 주4일제 추진해야"
독일 기업은 주4일 근무제 도입으로 노동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DW는 해당 제도가 주5일 근무를 원치 않던 사람들까지 노동 시장으로 끌어들여 노동력 부족 현상을 완화할 수 있으며, 기존 근로자의 업무 스트레스를 낮추고 근로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근로 시간 단축으로 직원들의 임금 인상 압박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주 4일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은 북유럽의 아이슬란드 사례를 든다. 아이슬란드는 2015~19년 4년간 유치원 교사, 회사원, 사회복지사, 병원 노동자 등 다양한 직군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제를 국가 차원에서 실험했다. 전체 노동 인구의 1%가 참여한 대규모 실험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엄청난 성공으로 결론났다”면서 “근로자들은 기존 성과와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고 직장에서 더 나은 협업을 이뤘다”고 전했다.
실험을 주도한 지속가능민주연합(ALDA)과 싱크탱크인 오토노미는 보고서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은 오늘날 최첨단 경제 구조 하에서 바람직하며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주 4일 근무제를 실험한 적 있다. 벨기에는 지난 2022년 정부 차원에서 근로자가 주4일 근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정했다. 영국은 지난 2022년 61개 기업이 6개월간 주4일 근무제를 시범 운영했는데, 이중 56개 기업에선 평균 수익이 약 1.4% 증가했다. 참여 기업 전체의 직원 병가 일수는 65%, 이직률은 57% 감소했다. 가디언은 “참여 직원 중 3분의 2가 환상적인 업무 성과를 냈고, 직장 만족도도 상승했다”고 전했다.
상당수 독일 기업과 근로자들은 주4일 근무제를 정부 차원에서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론조사업체 포르사(Forsa)에 따르면, 독일 내 근로자 중 71%가 주4일 근무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4분의 3 이상은 정부 차원에서 주4일 근무제 도입을 추진해야한다고 답했다. 기업 고용주 가운데선 3분의 2 이상이 정부의 주4일 근무제 도입에 대해 찬성했다.
정부‧학계 “노동력 부족 해법은 노동시간 연장”
하지만 독일 정부는 주4일 근무제 도입 또는 기업에 장려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지난해 11월 블룸버그에 “역사상 덜 일하면서 번영한 조직은 없다”면서 “번영의 열쇠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친(親) 기업 성향의 린드너는 주4일제 개념이 번영에 방해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계에서도 제조업 기반의 독일이 근로 시간을 단축할 경우, 국가 경쟁력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독일 고용연구소(IAB)의 경제학자 베른트 피첸베르그는 “주4일 근무제는 기업에 더 높은 비용을 전가하며, 이는 노동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될 수 없다”고 우려했다.
IW 경제연구소의 경제학자 홀거 셰퍼 역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된 상황에서 근무 시간마저 단축한다면 상품·서비스 생산양은 필연적으로 감소한다”며 “이는 독일 경제에 재난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4일 근무제는) 비현실적인 꿈이며, 노동력 부족의 해결책은 ‘노동 시간 연장’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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