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노동 약자’를 위한 사회적 대화

2024. 2. 8. 04: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윤정부 출범 후 첫 노사정대화
경사노위, 노동개혁의 축 기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노동 약자 보호 위한 개혁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

윤 대통령이 의지 갖고
직접 현장 챙겨야 진전될 것

불신과 갈등의 벽을 쌓아가던 정부와 노동계가 마침내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지난 6일 윤석열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회의를 열었고 윤 대통령은 이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격려했다.

그동안 경사노위는 노동개혁 과정에서 별다른 역할을 못해 왔지만 이를 계기로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위상을 되찾고 앞으로 노동개혁의 중심축 역할을 하게 됐다.

윤석열정부에서 노사정 대화가 늦어지긴 했지만 첫 회의에서 의제와 논의 방식, ‘지속가능한 일자리와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합의까지 도출한 것은 큰 성과다. 이로써 노동개혁은 2단계로 접어들었고 주된 무대는 경사노위에 차려지게 됐다. 정부 입장에서 그동안 갈등을 불사하며 추진했던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제고와 법치주의 개혁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냈지만, 개혁의 또 다른 축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지지부진해 새 돌파구가 필요했다.

한국노총도 정부와 대화를 단절한 채 야당과 손잡고 대정부 투쟁에만 몰두하는 데 대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경사노위를 통한 대화와 타협은 지금 시점에서 노사정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인 셈이다.

대화 복원의 일등공신은 전쟁 중에도 대화는 이어가야 한다며 물밑에서 노사정을 끈질기게 설득한 경사노위 김문수 위원장이겠지만 그 근저에는 윤 대통령의 노동에 대한 비교적 중립적인 태도가 작용했다고 하겠다. 그는 검사로서 대기업의 경영비리나 노조의 채용비리 사건을 수사하며 대기업 노사관계의 불투명한 이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에게 노조의 회계 투명성과 법치주의 확립은 최우선 노동개혁 과제일 수 있다.

다만 그가 여러 차례 강조했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노동 약자 보호를 위한 개혁은 말만 무성했을 뿐 아무런 진전도 없었다. 그는 2022년 원·하청 임금격차 완화를 비롯한 이중구조 개선방안 마련을 지시했고, 작년 초에도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 크게 차이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런 것들을 바로잡는 게 노동개혁”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대통령비서실이나 고용노동부는 어떤 답도 내놓지 못했다. 건설노조의 불법은 근절했지만 임금체불액은 역대 최고치이고, 원·하청상생위원회나 상생임금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제도 개선 기미도 없다. 이제 와서 이중구조는 노조 때문이고 노·노 착취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며 말을 바꾸려 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이병희 박사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임금 격차의 근본 원인은 노조 협상력이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 지급능력 차이에 있다. 이론적으로도 당연한 결론이다. 우리는 아직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일부 유예하고 있고 노동 약자들은 아이를 낳으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이 아니라 경력 단절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중층적 하도급 구조에서 하청 단가와 노무비를 산정할 때나 수요 독점적인 플랫폼 노동과 특수고용, 프리랜서 고용에서 수수료를 책정할 때 공정성과 적정성을 보장하는 제도와 시장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개선하는 일은 온전히 정부의 몫이다. 노사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기업 집단 또는 업종별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기업실사(due diligence) 체계나 표준적인 임금직무 체계를 설계할 수도 있다.

노동 약자를 위한 개혁은 엘리트 관료들 관점에서 단기에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과제라서 대통령 지시가 있어도 시늉만 내다 말기 쉽다. 대통령이 안전모를 쓰고 노동 약자들의 현장으로 들어가 듣고 답을 찾으려 한다면 국민에게는 감동을, 정책 당국자에게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지속적인 관심이 없으면 하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마침 노조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달라는 경사노위 참석자의 요청에 따라 윤 대통령은 조만간 대화 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노사정 대표들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의제를 다룰 때 노동 약자를 우선 배려하는 자세로 대화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