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길게 그리고 멀리

2024. 2. 8. 03: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삶은 시간과 연결돼 해석된다. 어떤 평가를 하든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지금 실패했느냐 성공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실패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기도 한다. 삶은 엎치락뒤치락한다. 시간을 두고 바라보는 느긋함이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속도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조급해지면 길게 볼 수 없다. 이해타산이 너무 밝으면 볼 것을 못 본다. 욕망이 눈을 가리면 근시안이 된다.

무엇이든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사물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실체 파악이 어렵다. 거리를 두어야 보이는 게 있다. 바둑에서는 급수가 낮은 사람의 훈수에 판을 역전시키는 경우가 일어난다. 느긋한 마음으로 한발 물러서 보면 보이는 게 있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수읽기에서 결판이 난다. 하수는 눈으로 고수는 머리로 둔다고 한다. 수읽기는 결국 누가 더 멀리 보느냐로 결정된다.

어려운 문제를 가까이 들여다보며 풀려 하면 힘들어진다. 다급해지면 엉킨 실타래를 더 꼬이게 만든다. 집착이 강할수록 멀리 보지 못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독수리 눈은 참새와는 다르다. 참새는 바쁘기 그지없다. 독수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창공을 높이 날아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진다. 시계가 짧으면 하나를 얻으려다 열 가지를 잃는 선택을 하는 우매함에 빠진다. 시계를 확보할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해야 한다. 시야가 좁으면 눈앞의 것을 쟁취하는 데만 혈안이 된다. 세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진흙탕 싸움이다. 무엇이든 너무 가까이에서 보면 사고의 매몰 현상이 일어난다. 단편적인 접근은 객관성을 상실하게 한다. 객관성을 잃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멀리 봐야 통찰의 힘이 일어난다. 통찰력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에 도움을 준다. 피터 드러커는 “10분 후와 10년 후를 동시에 생각하라”고 했다. 현재와 미래의 어느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일어날 일을 무시한다면 10년 후는 없다. 그렇다고 현실에 매몰돼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금 하는 일, 역시 의미를 잃어버린다. 사물을 바라보는 안목의 조절 기능에 신축성이 있어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우고 미래를 전망하는 예지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몰이해는 편견을 만들어낸다. 길게, 그리고 멀리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바다로 항해하는 이들은 파도가 아니라 바다를 보며 떠난다고 한다. 시선이 너무 현실에서 멀리 떠나 있으면 망상가가 되고 너무 가까이 있으면 속물이 된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나를 잃어버린다. 가장 위험한 일이다. 매일 다가오는 일을 쳐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실에 매몰된다. 그때 현실을 객관화하기 어렵다. 바쁜 도시의 삶에서 자아는 매몰된다. 좁아진 시야로 스스로 만든 감옥에 자신을 감금시킨다. 새장에 갇힌 새와 같은 신세가 된다. 열심히 살긴 하는데 삶은 제자리다.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 사물을 제대로 봐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의 삶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스스로 낯설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현실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을 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눈을 바꾸면 현실을 바꿀 수 있다. 이방인의 눈으로 자신을 정직하게 응시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과 적정한 거리를 확보해야 자아편향적 주관성에 빠진 나를 건져낼 수 있다. 현실은 치열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다. 시계 확보가 관건이다. 쫓기는 시대, 불안 가득한 시대, 삶의 관조가 필요하다. 고요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여유를 확보하자. 거리 확보를 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은 멀리 보게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