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의 퍼스펙티브] 질문하라, 비판하라 ‘똑똑한 문제아’가 사회 발전시킨다
문제 잘 풀고 성실한 한국 학생을 걱정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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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제 순응적 모범생 문화로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력 안 생겨
혁신은 능력보다 환경 영향 커
저소득층·여성 혁신재능 계발을
프로젝트 단위 연구비 지원보다
연구자의 미래를 보고 지원해야
」
해외에서 느낀 한국의 교육 문화
그런데 미국에 경제학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가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나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와 질문 세례는 미덕이 되었다. 반면 대부분의 아시아권 학생들은 여전히 교수의 학문적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침묵했다. 교수들은 그런 나를 “한국 학생 같지 않다”며 칭찬했고 내가 미국 대학의 교수가 될 수 있도록 힘써주었다.
한국 학생 같지 않다니 무슨 말인가? 미국 교수가 되고 나니, 한국인 학생들에 대한 그들의 비교적 솔직한 이야기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아시아권(한·중·일) 학생들은 주어진 문제를 잘 풀고, 연구 조교로는 누구보다 성실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라는 것이다. 연구를 위해서는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이를 넘어서는 창의력이 중요한데, 한국 학생들은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고 했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박사과정 선배였던 한 저명한 미국 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의 유명 대학 박사과정 동료 중엔 한국이 낳은 천재가 있었다. 시험 성적이 모든 과목에서 압도적인 일등이었다. 그동안 이 대학은 박사 종합시험의 성적을 합격/불합격으로만 기록했는데, 이 분 때문에 ‘뛰어난 합격 (High Pass)’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었을 정도였다.
문제는 본격적인 박사 논문 작성과정에서 발생했다. 본인이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아야 하는데 이 한국인 천재는 주어진 문제를 푸는 엄청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풀어야 할 문제를 찾지 못했다. 결국 “나는 연구에 적합한 창의적인 사람이 아니다”고 선언하며 박사과정을 그만두었다. 이는 다소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실제 많은 한국 학생들이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경험한다.
한편 코로나 팬데믹에서 비판적 사고에 관한 국가적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정부가 몇 명이 모일 수 있는지,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등 시민의 일상의 삶에 깊숙이 개입했다. 자율성이 침해될 때 합리적 시민은 그 이유를 따져 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조치가 꼭 필요한지 되묻기보다는, 정부 지침을 어기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늦게 마스크를 벗었고, 불필요하게 오랫동안 학교 문을 닫았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규칙 깨는 문제아가 혁신 이끌어
경제학자들은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주목한다. 창의성은 측정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이다. 반면 혁신은 특허의 질과 양으로 측정할 수 있고 기업가 정신은 창업의 질과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 또 창의성이 혁신이나 창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상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적 기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 발전에 핵심인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버클리대와 런던정경대의 경제학자들은 똑똑한 문제아(Smart and Illicit)가 혁신을 만들어가는 기업가(주식회사의 소유주)가 될 가능성이 크게 높다는 사실을 밝혔다(Levine and Rubinstein, 2016). 어린 시절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공격적이고, 위험 감수적이며, 혼란스럽고, 규칙을 깨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똑똑하기까지 하다면 혁신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좋은 자존감도 혁신가가 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혁신과는 거리가 먼 체제 순응적 모범생을 길러내고 있다. 나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인 코넬대에서 8년, 아시아 정상권 학교인 홍콩 과기대에서 4년째 교편을 잡고 있다. 오랫동안 미국, 유럽, 남미, 한·중·일 등 동아시아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나라의 국제학교 출신 학생들을 가르쳤다. 전세계 다양한 교육 제도가 낳은 가장 뛰어난 대학생들을 비교해 볼 기회가 많았던 셈이다.
나는 수업에서 경제학이 검증하고 축적한 다양한 증거들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수업에 비판적으로 임해야 한다. 내가 가르친 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토론한다. 더 나아가 본인 국가의 특정 이슈에 대해서 본인이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 유럽, 남미 출신이 동아시아 한·중·일 출신 학생보다 일반적으로 더 적극적이며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생각도 잘한다. 교수의 권위에 맹종하는 경우도 드물다.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교수와 개인적으로 친해질 만한 사회성을 갖춘 아시아 학생은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물론 동아시아 출신 학생이 시험은 더 잘 본다.
국제학교를 졸업한 동아시아 출신은 흥미로운 집단이다.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에서 살지만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이들은 중간자적 특징을 가졌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학생들의 침묵에는 교육과 문화 모두가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권위주의 중국이 혁신 못 하는 이유
세계은행에서 올해 출간될 세계 개발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는 중진국의 경제발전을 다룬다.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 어떻게 중진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지 살펴본다. 이를 위해 지난달 중국을 거쳐 홍콩을 방문한 세계은행 팀을 만났다. 이들은 모방(imitation)에서 크게 성공한 중국 경제가 왜 다음 단계인 혁신(innovation)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중요하게 논의된 것은 교육제도와 권위주의적 사회였다. 중국 교육은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자 극한 경쟁의 대명사다. 여기에 더해 중국인들은 권위적인 정부를 비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고가 경직되고 창의력이 싹틀 공간이 제한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혁신적 성장에 모든 국민이 창의적일 필요까지는 없으니 창의적 엘리트를 기르는 것을 논의했다.
최근 하버드대 라즈 체티(Raj Chetty) 교수팀은 혁신적 발명가 120만명의 삶을 추적했다(Bell et al, 2019). 지난 수십년의 특허 자료, 국세청 및 뉴욕시 교육청 자료를 통합한 대형 프로젝트다. 혁신가는 대부분 중산층 이상에서 태어났다. 소득수준 하위 50% 이하의 가정에서 발명가는 1000명 중 1명 미만이나, 상위 1%는 그 확률이 10배도 넘었다. 성별 격차도 상당했다. 발명가의 82%는 남성이었다.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이러한 격차가 타고난 능력 차이보다는 환경의 차이에 의한 것이 더 크다는 점을 보인 것이다. 가령 초등학교 시절 수학 시험 점수가 비슷한 아이들 사이에서도 가정 형편에 따라 발명가가 될 확률에 큰 차이가 났다. 어린 시절 특정 분야의 기술 혁신이 일어나는 동네·가족에서 자라면 그 분야의 발명가가 될 확률이 증가한다. 이는 혁신의 자질이 롤 모델 또는 인턴십 등 통한 네트워크 효과 등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학창시절 혁신에 노출되었다면 중요한 발명을 할 수 있었던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이 저소득층과 여성에게 많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꽃피울 수 없었던 이들의 숨겨진 재능을 찾아내 사회에 이바지하게 돕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국가는 혁신 창업의 위험 줄여야
국가는 혁신을 촉진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혁신적 창업에 따른 위험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가령, 프랑스는 2002년 창업 실패 시에 최소 2~3년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결과 창업이 크게 늘었고 이로 인해 연간 9000~2만4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었다(Hombert et al, 2020).
혁신을 위한 연구비 사용도 개선하자. 연구비는 대개 프로젝트에 기반한 단발성 과제에 주어진다. 평가 주기도 짧고,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편이다. 미국의 비영리 의료 연구 기관인 하워드 휴즈 연구소는 프로젝트가 아닌 ‘연구자’의 미래를 보고 연구비를 수여했다. 최소 5~10년 동안 자유롭게 연구하고, 중간에 실패하면 다른 방식으로 도전할 수 있게 도왔다. 그 결과 비슷한 액수의 연구비를 받은 다른 연구자에 비해 훨씬 큰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있었다(Azoulay et al. 2011).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기관이다. 그런데 이미 학문적 성과가 높은 사람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만일 노벨상을 원한다면 전도 유망한 소장학자에게도 이와 같은 투자를 고려하자. 노벨상은 보통 70세를 넘어서 받지만, 이들이 노벨상을 받게 한 연구는 평균적으로 40대에 이루어졌다(Bjørk, 2019).
권위에 대한 복종, 강요된 침묵, 남 눈치나 보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식의 대한민국 사회의 운용 법칙을 이제 끝을 내자. 개인의 개성과 자유가 꽃피우고, 다양한 문제 제기가 존중되며,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조용히 약자를 도울 때 혁신이 가속화된다.
문제아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질문하라. 비판하라. 외쳐라. 이것이 이 사회를 변혁하고 국가를 발전시킨다!
◆김현철=의사이자 경제학자.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로 활동하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코넬대 정책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홍콩과기대 경제학과에 재직 중이다. 사회실험, 자연실험, 빅데이터를 통해 보건·교육·노동·돌봄 및 복지 정책을 연구한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 의사
참고문헌
Levine, Ross, and Yona Rubinstein. "Smart and illicit: who becomes an entrepreneur and do they earn more?."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32.2 (2017): 963-1018.
Bell, Alex, Raj Chetty, Xavier Jaravel, Neviana Petkova, and John Van Reenen. "Who becomes an inventor in America? The importance of exposure to innovation."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34, no. 2 (2019): 647-713.
Liang, James, Hui Wang, and Edward P. Lazear. "Demographics and entrepreneurship."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126, no. S1 (2018): S140-S196.
Acemoglu, Daron, Ufuk Akcigit, and Murat Alp Celik. Young, restless and creative: Openness to disruption and creative innovations. No. w19894.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2014.
Azoulay, Pierre, Joshua S. Graff Zivin, and Gustavo Manso. "Incentives and creativity: evidence from the academic life sciences." The RAND Journal of Economics 42, no. 3 (2011): 527-554.
Hombert, Johan, Antoinette Schoar, David Sraer, and David Thesmar. "Can unemployment insurance spur entrepreneurial activity? Evidence from France." The Journal of Finance 75, no. 3 (2020): 1247-1285.
Gottlieb, Joshua D., Richard R. Townsend, and Ting Xu. "Does career risk deter potential entrepreneurs?." The Review of Financial Studies 35, no. 9 (2022): 3973-4015.
Bjørk, Rasmus. "The age at which Noble Prize research is conducted." Scientometrics 119, no. 2 (2019): 93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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