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의 과학 산책] 눈을 감고 바라보면
프랑스의 수학도 루이 앙뜨왕(1888~1971)은 1차대전 참전 중 눈에 총상을 입는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시력을 잃은 채 전역한 그는, 당시 적분 이론의 대가였던 앙리 르벡을 찾아갔다. 돌아온 것은 뜻밖의 조언이었다. “위상수학을 연구해 보세요. 시력이 없어도 영혼의 눈과 집중의 힘을 이용할 수 있어요.”
위상수학은 20세기에 등장한 기하학의 한 형태이다. 공간과 물체의 변형을 연구하기 때문에 어느 수학 분야보다도 외형적인 모양을 중요시한다. 앙뜨왕이 당황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는 조언에 충실했고, 스트라스부르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한다. 그리고 1921년, 현대 위상수학의 교과서에 등장하게 될 ‘앙뜨왕의 목걸이’를 발견한다. 무한히 많은 고리를 가상의 공간에서 잘 꿰어내면 당시 수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성질을 가진다는 내용이다. 이 발견은 이후 100여년간 이어진 인류의 거대 프로젝트 ‘3차원 공간의 분류 문제’에서 주춧돌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앙뜨왕 외에도 러시아 수학사의 위인인 레프 폰트리야긴, 접촉 기하학의 대가 엠마뉴엘 지로 등 많은 위상수학자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레온하르트 오일러 (1707~1783)는 ‘오일러 특성수’라는 위상수학의 근간을 만든 수학사의 거인이다. 그는 평생 880여 편의 논문을 썼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시력을 완전히 잃은 50세 이후에 완성하였다. (젊었을 때는 아기를 안고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가장 위대한 발견을 이뤄냈다고 회고한다.)
인간의 시각은 강력하다. 시공간에 펼쳐진 복잡한 정보를 순식간에 해석해 내는 능력이다. 경이롭게도, 앞을 보는 능력, 즉 시력이 없는 수학자들 역시 정밀한 그림을 상상 속에서 분석하고, 시각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내고 있다. 눈을 감고 바라보면, 마음속의 전부가 풍경이 되어 그 반짝이는 의미를 우리에게 전하고는 한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진심까지도?
김상현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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