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잠복근무도 한다’ 17년차 태국댁
한국에서 17년을 산 태국 출신 서지현(53)씨는 충북 청주에서 ‘왕언니’이자 마당발로 통한다. 능숙한 한국어 솜씨와 친화력 덕분에 2022년부터 청주시 외국인 명예 이통장 회장을 맡고 있다. 태국어 외에 라오스어를 할 줄 안다. 서씨는 통역 봉사뿐만 아니라 검·경 협조 요청을 받으면 태국인 마약 사범 검거나 불법 성매매 단속 현장에 동행한다. 용의자 체포 전 죄명과 변호사 선임 권리 등을 고지하는 ‘미란다 원칙’을 태국말로 알린다. 경찰 초동 조사 진술에 참여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를 대신해 비자 만료 기간을 안내하고, 강제 추방 위기에 처한 외국인 사정을 대변할 때도 있다.
서씨는 2007년 남편 서승환(61)씨와 결혼해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태국 이름은 파타라펀이다. 자녀는 없다. 2011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지혜롭고, 현명하다는 뜻의 ‘지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베테랑 통역사급 한국어 실력을 갖추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서씨는 “근처에 살던 둘째 시누이가 한국어를 익히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냉장고·의자·가스·창문 등 한글로 쓴 메모지를 집안 곳곳에 붙여놓고 단어를 익혔다”고 말했다.
서씨는 충북 이주여성인권센터와 이후 청주의 한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했다. 이후 2014년부터 결혼이민자 통번역자원봉사단 글로벌 소통리더로서 통역 봉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청주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비롯해 이주여성인권센터, 충북다문화포럼에서 한국어 강의와 상담, 이주 여성 실태조사 등을 돕는다. 외국인 이통장(태국) 회장 자리를 맡아 코로나19 방역수칙이나, 종량제봉투 처리 방법 등 행정시책을 이주 여성에게 알려준다. 서씨는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생활비를 못 받는 등 고통에 시달리는 이주 여성이 많다”며 “한국말이 서툰 1~2년 차 이주 여성을 주로 돕는다”고 말했다.
서씨는 또 “불법 성매매 단속 요청이 들어오면 밤 9시나 새벽 2시~4시 사이에 현장에 함께 나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경찰서에서 초기 조사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태국인 마약 사범 단속에 나갈 때는 잠복근무도 마다치 않았다. 서씨는 대구와 대전·인천·충북 음성 등에 마약 단속 현장에 출동했다. 2021년 8월께 경남 고성에 숨은 마약 사범을 잡을 때는 서씨 눈썰미가 빛을 발했다. 범인 거주지는 아파트 3층이었지만, 인기척이 없어서 체포조는 일행이 잠복해 있던 자동차로 그냥 돌아왔다. 서씨는 “3층 창문에서 얼굴을 잠깐 내민 범인 얼굴을 언뜻 본 것 같아 ‘안에 사람이 있다’고 알려줬다”며 “문을 두드리며 태국어로 ‘택배가 왔다’고 유인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수사관이 범인을 잡았다”고 말했다. 2020년 11월엔 세종시 부강면에 숨어있던 태국인 마약 유통책 7~8명을 검거할 때는 경찰과 함께 탈출구를 막았다.
명절 때마다 남편과 함께 차례를 지낸 서씨는 이번 설에는 남편과 베트남 여행을 떠난다. 서씨는 “남편 형제들과 상의해 차례와 시부모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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