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뇌사청년 심장이 옮겨가는 24시간…1인극에 담은 삶의 의미
시몽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지만, 아직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시몽에게 뇌사 판정을 내리고, 남겨진 가족에게 그의 장기를 이식 대기자에게 나눠줄 것을 제안한다. 시몽의 부모는 결정해야 한다. 여전히 심장이 펄떡이는 아들의 몸을 가르고 간과 신장과 심장, 그리고 세포와 조직을 뜯어낼 것인지를.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연출 민새롬)는 열아홉 살 청년 시몽 랭브르가 불의의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50만부 이상 판매된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2016년 맨부커상 국제부문 후보(롱리스트)에 올랐고, 전 세계 11개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한 사람이 연기한다. 배우 손상규와 윤나무가 2019년 초연부터 2022년 삼연에 이어 네 번째 무대에 선다. 김신록과 김지현은 2022년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다.
지난달 20일 저녁 무대에 오른 배우 손상규는 시몽의 상황을 서술하는 전지적 관찰자, 시몽의 부모, 장기를 적출하는 의사, 이식을 받는 중년 여성, 그리고 열아홉 살의 시몽을 자유자재로 오갔다. 차분한 목소리로 가족에게 장기 이식을 권유하는 의사를 연기하다, 돌연 사랑에 빠진 열아홉 살 청년 시몽의 목소리를 냈고, 곧이어 장기 기증자가 누군지 물으며 흐느끼는 중년 여성으로 얼굴을 바꿨다. 순식간에 목소리와 표정을 바꾸며 ‘영혼’을 갈아 끼우면서도 억지스럽거나 과한 구석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 장치는 빨간색 전자시계와 테이블이 전부다. 심장 박동 소리와 파도 소리 외에는 음향 효과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배우 손상규가 100분간 홀로 무대를 누볐다.
특히 수술용 메스를 쥔 듯한 배우의 손짓과 그 손을 비추는 예리한 빛, 대사만으로 구성된 장기 이식 장면은 ‘비움의 미학’ 그 자체였다. 암시와 은유뿐이지만, 새빨간 피나 펄떡이는 장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 관객들은 수술실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몽의 심장은 블랙박스다.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을 하는 시몽, 처음 사랑에 빠진 시몽, 친구들과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시몽…. 그의 19년 짧은 생이 담겨 있다.
시몽의 몸에서 심장을 떼어 내기 직전, 의사는 그의 귀에 이어폰을 꽂는다. 거친 파도 소리가 시몽의 영혼을 채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심장이 멈춘다. 그렇게 오전 5시 49분 59초에 시작된 공연은 오전 5시 49분 59초에 끝난다. 장기 이식 수혜자들의 삶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극은 교훈이나 도덕을 내세우지 않는다. 주인공 시몽과 그가 겪은 끔찍한 사고, 가족들이 느끼는 비통함에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오히려 수술실 인턴, 병원 코디네이터 등 비중 없는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촘촘히 묘사한다. 누군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일상은 계속된다는,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표현하는 듯하다.
연극은 3월 10일까지 정동극장에서 볼 수 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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