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지기 금순·은심의 ‘소풍’…“우리 얘기 담듯이 찍었다”
“100세 시대라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죠. 돈·자식·남편이 있어도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때의 불행은 대처할 길이 없어요. 살아도 산 게 아닌데 의료행위로 끌고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김영옥)
“아픈 몸으로 한없이 누워있을 때가 정말 지옥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회복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병원에서 연명 치료 하지 않고) 지옥에서 해방되면 좋겠습니다.”(나문희)
최고령 현역배우 김영옥(86)과 80대 최고 흥행배우 나문희(82)는 불필요한 연명 치료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실제 63년 지기 친구인 두 사람은 노년의 우정과 나이 듦을 그린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 개봉일인 7일 서울 삼청동에서 이들을 만났다.
‘수상한 그녀’(2014),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출연 영화의 총관객 수가 4124만명에 달하는 나문희는 18년 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MBC) 속 명장면 “호박 고구마”가 MZ세대에게 사랑받는 ‘현역 스타’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 애플TV+ ‘파친코’(2022) 등 글로벌 OTT 시리즈의 ‘신스틸러’로 부상한 김영옥과는 연예계 소문난 절친 사이다. JTBC 예능 ‘뜨거운 씽어즈’(2022)의 실버 합창단을 함께하기도 했다.
‘소풍’에선 사돈이자 고향 친구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됐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 내외가 은심이 사는 집을 팔자며 들이닥친 날, 연락도 없이 금순이 찾아온다. 소녀 때로 돌아간 듯 무인 주문키 조작이 서툰 걸 놀려대고, 햄버거를 먹고, 즉석 사진을 찍던 두 사람은 60년 만에 함께 소풍 가듯 고향길에 오른다. 경남 남해로. 학창 시절 은심을 짝사랑한 태호(박근형)는 막걸리 장인이 되어 그곳을 지키고 있다.
연기 경력이 도합 195년(나문희 63년, 김영옥 67년, 박근형 65년)인 배우들은 “연기라기보다는 카메라에 나를 담은 듯”(나문희), “우리들의 이야기”(김영옥)를 잔잔히 그려냈다.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주고받는 유쾌한 막걸리 한잔 속에, 노화로 인한 질병, 마지막 보금자리까지 위협하는 재개발·상속 문제, 노인 학대와 존엄사 등 묵직한 화두를 자연스레 담았다.
은심은 파킨슨병으로 손 떨림이 심해지면서 부쩍 돌아가신 엄마가 눈에 어른댄다. 그런 은심을 걱정하는 금순도 허리 통증이 악화해 대소변을 가리기 힘들어진 처지다. 지난해 12월 남편과 사별한 나문희는 “연기는 사실적인 게 중요하다. 나한테 닥친 것을 과감하게,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김영옥은 “노인이 쓰러지면 가정에서 씻기고 먹이고 대소변 받아내던 시대도 이젠 지났다. 건강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는 걸 ‘소풍’을 통해 더 느꼈다”고 말했다.
‘소풍’은 ‘와니와 준하’(2001), ‘더 웹툰: 예고살인’(2013) 등을 만든 김용균 감독이 연출했다. 나문희의 20년 지기 매니저의 아내인 조현미 작가의 각본을 토대로 했다. 김영옥은 나문희가 직접 섭외했다.
두 사람은 1961년 MBC 성우극회 1기로 만났다. 김영옥이 ‘마징가Z’ ‘로봇 태권브이’ 등 만화영화 소년 역, 나문희는 배우 소피아 로렌, 메릴린 먼로 등 외화 더빙을 도맡았다. 그때부터 중년 이후 연기자로 전성기를 맞기까지, 두 사람이 평생 쌓아온 우정은 극 중 두 친구의 그것과 닮았다. 나문희는 “배고픈 시절 같이 연기했다. 인생 공부를 했다”며 “김영옥 씨하고 나는 친해도 조심하고 경우를 지킨다. 필요할 땐 꼭 있어 준다”고 돈독한 관계의 비결을 밝혔다.
‘소풍’과 같은 날 윤여정 주연 영화 ‘도그 데이즈’도 개봉했다. 앞서 윤여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80대 라이벌들을 반기며 김영옥이 ‘롤모델’이라 고백했다. 김영옥은 “그 대배우가 무슨 나를 롤모델”이라며 “황감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못하겠다 하다가도 나를 믿고 대본을 주면 ‘미친 사람’처럼 내가 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며 “연기는 할 때마다 신들린 듯 인물에 빠져서 한다. 행복한 고생”이라고 말했다.
나문희는 “‘소풍’은 노인네가 주인공이지만, 어느 세대도 소홀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서 “철이 덜 든 사람이 보면, 인생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더 많이 느끼고 (삶에 대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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