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미스트 전현지의 춘천 아틀리에
나다움을 지키면서 정체되지 않는 것. 그 사이에서 능숙하게 줄타기하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매진해 온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세라미스트 전현지는 그 기로에서 춘천에 새로운 작업실을 마련했다.
한적한 신촌리 언덕배기에 부모님 집과 함께 지은 작업실은 그가 만드는 도자기와 묘하게 닮았다. 정갈한 형태에 차분하게 누그러진 색감, 재료 본연의 물성을 드러내는 점에서 말이다.
전현지는 10여 년간 세라믹 스튜디오 ‘이악크래프트’를 운영하며 생활 속 오브제로서 도자를 정착시키는 데 몰두해 왔다. 이악크래프트가 어엿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후에 찾아온 것은 개인 작업에 대한 갈증이었다. 일상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했다.
한남동에 스튜디오와 작업실이 있지만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기엔 협소했고, 대표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에 좀 더 넓고 작업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꾸렸다. 전현지에게 흙은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재료 그 이상이다. 갖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날에도 작업대 앞에 서면 머릿속이 말갛게 개는 순간이 많았다.
“작업할 때 제일 마음이 편해요. 물론 주제에 대한 고민이나 마감에 대한 압박이 있지만, 막상 흙을 만지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돼요. 비워내는 시간이랄까요.” 흙은 다른 조형 재료와 달리 자연에서 왔기에 재료가 지닌 한계가 뚜렷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가마에서 나와 완성되는 순간 비로소 제 모습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의도대로 구현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이를 통해 도자뿐 아니라 인생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매 순간 깨쳤고, 조형 재료로서 흙이 지닌 속성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됐다.
춘천 작업실에서 빚어진 전현지의 도자 작품은 이악크래프트의 오브제와 결이 다르다. 일정 용도를 염두에 두고 작업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 중력에 의해 처지고 늘어진다는 특징을 이용한 새로운 오브제는 자칫 갈라지고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을 견딘 끝에 나온 고마운 산물이다.
“언제나 무언가 틀어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갖고 살았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은 평범하고 똑바른 게 아니라 비범한 것이더라고요.” 금요일 밤, 어둠이 내려앉은 춘천 작업실은 한 사람의 움직임만으로도 분주해진다. 때론 리드미컬하게, 때론 천천히 공간을 채우는 음악을 들으며 전현지는흙을 빚고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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