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다이어리가 국룰! 애플의 첫 일기 앱 '저널'
‘2023년 12월 29일 금요일 오전 10:07~오전 10:55’, ‘3,985 걸음’이라는 ‘걷기’ 운동을 선택하자 운동했던 장소와 걸음 수가 함께 표시됐다. 그 항목을 눌러 ‘2023년의 마지막 산책’이라는 이름의 일기를 적었다. 사진 앱에서 특정 순간을 아카이빙해 보여주는 ‘추억’ 사진 모음집이 일기에도 연동되는 덕분에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3년 전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봤던 콘서트 등 과거의 어떤 장면이 일기 앱 위에서 되살아나기도 한다. 한편 일기 앱은 ‘성찰해보기’라는 이름으로 “오늘 한 일 중에서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최근 영감을 준 작품을 감상했던 순간에 대해 써보세요. 사진이 있다면 함께 넣어보세요” 등과 같은 글감을 던진다.
사실 랜덤하게 글의 주제를 제안하는 기능이야 그리 놀랍지 않지만 사진, 음악, 음성 메모 등 아이폰의 기본 앱을 연동해 기록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드는 건 이 앱만의 능력이다. 다시 말해 일기 앱이 애플의 세계관 안에서 방대하게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령 지갑 앱을 연동하면 일기는 가계부로 변신할 수도 있고, 일기 앱 안에서도 캘린더가 연동된다면 일별 혹은 달별로 일기를 정리하거나 지난 기록을 다시 찾아보기에도 수월할 테니 말이다. 일기 알람을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은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 낯선 이들에게 유용한 자극제다.
특정 요일과 시간을 일기 쓰는 시간으로 설정해두면 꼬박꼬박 알람이 울리는데, 그럴 때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혼자만의 순간으로 짧은 도피를 떠난다. 내게도 이 알람은 일기 쓰는 걸 다시 습관화하기 위한 장치였는데, 일주일쯤 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쓰는 10분 남짓한 시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유일한 순간이었다는 걸. 일에 절어 피로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SNS 피드, 각종 숏폼 콘텐츠를 스크롤 하는 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퍽 서글퍼진다. 이 일기 앱에는 힘이 있다. 멈추지 않고 흘러 나도 모르는 틈에 사라져버리는 순간을 붙잡아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힘. 일기 앱을 사용한 지 한 달이 돼가는 지금, 적어두고 싶은 걸 생각해두었다가 알람이 울리기 전에 먼저 앱을 켜 일기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일은 어떤 글감이 내 ‘성찰’을 자극할까 기대도 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이제 갓 출시한 앱이라 그런지 현재는 아이폰에서만 지원이 가능하다. 애플의 기본 앱이니만큼 아이패드나 맥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기기에 구애받지 않고 일기를 쓸 수 있는 환경은 더 넓어질 거다. 일기 앱의 다음 업데이트를 기대해본다.
지나간 추억은 힘이 없다고 했던가. 무형의 추억을 유형의 기록으로 남겨두는 건 적어도 오늘의 유용한 쉼표가 된다고 믿는다. 잠시 멈춰서 다시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은 이곳에 하나둘 쌓여 나만 아는, 별 볼 일 없고도 근사한 이야기로 자라나겠지. 그것만으로 든든한 ‘빽’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TIP원하는 사진과 영상을 넣어 일기를 더 풍성한 내용으로 완성할 수 있다. 일기 한 편당 최대 13개까지 추가할 수 있다.
TIP음악 앱에서 최근 들었던 노래나 플레이리스트를 일기에 덧붙일 수 있는데, 일기를 쓰다 그 음악이 듣고 싶으면 바로 재생 가능하다.
TIP 운동한 시간과 소모한 칼로리를 기록해둘 수 있어 운동 일지로 활용하기에도 손색없다.
TIP매일 비슷한 내용만 적는다면 ‘성찰해보기’ 탭에서 제안하는 주제로 일기를 써보자. 텍스트뿐 아니라 사진, 영상, 내 음성으로 기록하는 일기, 새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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