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소중해” 아가들과 눈인사·24시간 대기… ‘사랑의 온기’ 더한 베이비박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명절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방문한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 돌봄방 앞에 쓰여 있는 글귀가 이곳의 존재 이유를 알렸다. ‘위기 영아 긴급보호센터’로 알려진 이곳은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의 헌신으로 시작돼 14년째 운영 중이다. 이날 봉사자로 참여한 인턴기자는 먼저 아기들의 면역력 보호를 위해 소독된 흰 티를 입고 앞치마를 둘렀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하나님 사랑 전할 것”
아기들이 있는 방문을 여니 목욕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욕실에서는 우는 아기를 달래며 씻기는 보육사가 있었고 방에는 아기에게 로션을 발라주며 연신 “예쁘다”고 말하는 상담사와 아기를 돌보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다.
이 목사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이곳에서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 하나님 사랑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는 말 못 할 사정을 가진 미혼모들을 상담하고 양육 과정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낙태를 고민하는 산모들이 생명을 지키도록 돕는 경우도 많았다. 이 목사는 “친부의 잠적, 청소년 임신 등 여러 위기 임신의 상황으로 찾아온 산모들도 많다”며 “낙태를 결심했지만 병원에서 초음파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듣고 마음을 바꿔 출산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24시간’ 아기 돌보는 봉사자들의 헌신
센터에는 아기들을 위해 24시간 대기 중인 보육사와 상담사 등 1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아기 돌봄 봉사는 오전·오후·저녁·새벽 4교대로 진행된다. 시간당 봉사자 2명과 보육사 한 명이 투입된다. 그럼에도 이 목사는 “매주 70여명 봉사자가 이곳에 오지만 항상 봉사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민숙(62) 센터장은 “올해는 총 5명의 아기가 찾아왔고 현재는 세 명이 있다”고 말했다. 세 아기 모두 생후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신생아였다. 상담사로부터 분유 제조법과 수유 일지 기록법을 배우고 아기들의 이름과 얼굴을 확인했다. 첫 돌을 앞둔 사랑(가명)이와 막내인 혁수(가명) 그리고 1.5㎏ 조숙아로 태어나 지난주에 온 채민이(가명)까지 한 명씩 얼굴을 보며 눈인사를 했다.
33㎡(약 10평) 남짓한 아기방의 벽면은 모두 6개의 아기 침대로 둘러싸여 있다. 침대에는 개인용 손수건, 모자, 베개가 놓여 있다. 보육사 옆에서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을 익혔다. 아기를 돌보는 방법을 배운 뒤 아침을 먹을 시간이 된 혁수에게 분유를 먹였다. 이미 목욕하고 노곤해진 혁수는 분유를 먹은 뒤 배부르니 금세 잠들었다. 아기 침대 옆에 있는 스피커에서는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아름답단다’라는 찬양 가사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분유를 먹인 뒤 트림시키고 아기를 재우는 것으로 오전 봉사는 마무리됐다. 이후 오후 봉사를 맡은 간호대 학생이 찾아왔다. 김희수(가명·22)씨는 “간호대 실습 중 한 아기만 성(姓)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베이비박스에서 온 아기였다. 그 아기의 모습이 오래 남아서 베이비박스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림자 영아’ 수사 후 사각지대 영아 증가
지난 6월 ‘냉장고 영아 유기’ 사건을 계기로 미등록된 ‘그림자 영아’에 대한 경찰 수사가 본격화한 뒤 역설적으로 ‘베이비박스’에 맡겨진 영아 숫자는 급감한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본보 지난해 12월 18일 33면). 황 센터장의 전언대로 올해 이곳에 들어온 아기는 5명에 불과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그림자 영아’ 조사 후 베이비박스 분위기에 대해 “오히려 미혼모의 인권 문제는 심각해졌고 보호받지 못하는 영아들이 많아졌다”며 씁쓸 해했다. 이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미혼모와 영아들을 돕는 주사랑공동체가 영아일시보호센터이자 상담소로 정식으로 인정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 목사는 올해 7월부터 시행되는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보호출산제)에 대해선 “보호출산제로 ‘선지원 후행정’이 가능해졌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다만 “출산한 친모가 아기를 키울 수 있도록 주거지 제공 등 정부에서 최소 3년 정도는 확실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한 뒤 “독일처럼 친부의 양육권을 책임지도록 하는 법도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무엇보다 미혼모들이 사회적 편견 없이 아기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그는 “미혼모에게 손가락질하는 분위기부터 바뀌길 바란다”며 “생명을 존중하는 교육·법·문화·복지 시스템이 갖춰진 우리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천국에 간 15개월 ‘미등록 영아’ 추모하며
봉사를 마친 후 이곳을 떠나기 전 건물 옆에 묻힌 요한이의 묘를 찾았다. 태국에서 온 불법체류자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요한이는 출생신고를 못 한 ‘미등록 영아’로 2022년 이곳에 왔다. 그해 겨울 이곳에 처음 봉사자로 왔을 때 만난 요한이는 폐동맥폐쇄증을 앓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생후 15개월에 불과한 아기가 그렇게 이 땅을 떠났다.
이 목사는 “요한이의 사명은 엄마와 아빠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라며 센터에서 요한이의 병원비를 지원한 이야기 등을 들려줬다. 황 센터장은 “지난해 여름 이곳에서 요한이 돌잔치와 부모님 결혼식을 함께 했다. 그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센터에는 하나님 곁으로 떠난 요한이에게 쓴 무명의 봉사자 편지가 놓여있었다. “사랑하는 요한아, 짧은 시간이었지만 요한이는 우리에게 기쁨이고 축복이었어. 따뜻한 주님 품 안에서 다시 볼 날을 약속하며 안녕.”
김수연 인턴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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