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들 "우리도 전공의 파업 못 막는다, 책임지라는 정부 황당"
파격적인 의대 증원 결정에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정부가 7일 주요 병원장들을 만나 자제를 촉구했다. 전국 17개 시·도 보건국장과도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설 연휴 직후 전공의 등이 집단행동이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전공의 파업 막아라…정부, 병원에 당부
전국 전공의는 1만5000명에 달한다. 이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 대형병원은 진료 차질을 빚는다. 2020년 의료계 총파업 때 전공의의 파업(집단 휴진) 참여율이 80%에 달하면서 당시 정부가 의대 증원 추진 계획을 접은 전례가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회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의대 증원)2000명은 해도 너무 지나친 숫자”라며 “할 수 있는 모든 대응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대전협이 수련병원 140여곳 전공의 1만여명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8.2%가 의대 증원 때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
대전협은 오는 12일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전공의 이모씨는 “대전협이 주도하고 병원별로 집단행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 같다”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서울 ‘빅5’ 등은 대전협 요청에 따라 총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교수가 어떻게 막나”…의협은 파업 준비
익명을 요구한 서울 한 대학병원 원장 A씨는 “우리(병원장)가 '전공의 파업을 막을 수 없다'고 복지부에 설명했는데, 정부는 문제 발생 시 원장이 책임지라는 식이었다. 너무 황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문의를 따기 직전인 3~4년 차 전공의들이 교수 만류에도 ‘1년이라도 빨리 나가서 돈 버는 게 이득’이라고 말하고 사직을 결심하고 있다. 교수나 원장이 달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다른 대학병원 고위 관계자도 “파업으로 문제가 생기면 기관장을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길래 ‘지금 협박하는 거냐’는 항의가 나왔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가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사표 내고 나가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막냐”라며 “전공의 사직뿐 아니라 교수들의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총파업 준비 태세를 갖춰가고 있다. 의협은 이날 오후 이사회와 임시 대의원회총회를 잇달아 열고 향후 대응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한다. 전날 이필수 의협회장이 의대 증원에 반발에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다. 의협 관계자는 “비대위가 구성돼야 위원장 선출을 하기 때문에 연휴 뒤 투쟁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증원에 목소리를 자제해왔던 의학계도 우려의 입장을 잇따라 내놓았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의학 교육의 질을 저하하지 않기 위해 350~500명 증원을 시작으로 유연한 조정을 주장했으나 정부가 입학정원의 65%를 늘리는 대규모 증원 발표를 해 대단히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대한의학회도 입장문을 통해 “기초의학은 물론 임상의학 교수도 부족한 의과대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부 발표대로 의대 증원이 이루어진다면 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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