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릴레이 ELS판매 중단…소비자 보호 vs 선택권 제한 [김보미의 머니뭐니]

김보미 2024. 2. 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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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TV 김보미 기자]

주요 시중은행들이 하나둘씩 주가연계증권(ELS) 판매 전면 중단에 나서고 있다. 5대 은행 중에서는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이 관련 상품을 당분간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29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ELS와 같은 옵션매도 구조화 상품은 은행에서 팔아선 안 된다는 주장이 나왔고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으면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금융당국은 금융감독원의 현장검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제도개선에 본격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현재로선 은행권에서 ELS를 포함한 고위험 신탁상품 취급을 금지하거나 판매 총액에 제한을 두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은행권의 무조건적인 고위험상품 취급 제한은 또 다른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성급한 결정으로 은행권 창구에서 ELS상품이 전면 사라질 경우,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을 오히려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무조건 판매 중단부터 하자는 것은 자칫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금융소비자의 투자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내에서 판매된 홍콩ELS 19조 3천억원 가운데 은행권에서 판매된 규모는 무려 15조9천억원이다. 증권사에선 3조3천억원을 판매했다. 그만큼 금융소비자들의 대다수는 상품 가입 창구로 은행권을 택한다는 의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무조건 원금이 100% 보장되는 상품만 취급하면 해결되겠지?라는 생각은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상품 판매 채널이 아니라, 불완전 판매”라고 짚었다.

여기에 은행권의 ELS 취급 전면 중단 시, 자칫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일반적으로 증권사가 ELS를 발행하면, 은행에서는 이를 신탁 형태로 금융소비자들에 판매한다”며 “은행권의 상품 취급 규모가 워낙 큰 만큼 판매 전면 중단 시, 증권사의 ELS 발행이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대 전체 자금의 30~40%를 ELS로 조달해 왔던 증권사로서는 그만큼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발행금액은 벌써부터 크게 줄고 있다. 지난해 초 1,130억원 수준의 발행규모는 올해 1월 351억원대까지 뚝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증권사는 ELS발행을 통해 마련한 자금의 일부는 여전채(여신전문채권)에 투자하고, 또 일부는 지수 선물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굴리는데, 여기서 증권사 자금조달 난항→여전채 투자수요 감소→여전채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시장 변동성이 초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우선 "불완전판매 피해와 투자 손실을 엄격하게 구분하되, 불완전판매가 입증될 시에는 지금보다 제재·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이후 불완전판매에 대해 과징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지만, 과징금의 부과수준이 여전히 낮다”면서 “판매수수료 수익의 최대 50% 이내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LS의 경우 판매수수료 수익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해외처럼 소비자가 피해를 본 금액의 최대 2배에서 3배로 부과하는 방향으로 제재 수준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미국,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조 단위 과징금을 물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도이체방크의 MBS(주택담보부증권) 불완전 판매와 관련해 미국 법무부는 72억달러(약 8조 3,664억원. 2017년 환율 기준) 과징금을 부과했고, 같은 해 영국계 은행인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이 미국에서 부실 MBS를 판매한 혐의로 49억달러 벌금을 받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오기 전 2005년부터 담보능력이 없는 MBS를 마치 안전한 자산인 것처럼 꾸며 판매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관련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나온다. 일정 소득, 일정 부분 투자경험이 입증된 사람에게 전문투자자 자격을 부여해 각종 파생상품, 사모펀드에 투자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처럼, 고위험상품 가입 절차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모든 가입자에게 금융상품구조를 자세히 설명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며 “AI가 빠른 속도로 상품 설명을 대체하는 편법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자격이 검증된 투자자에게는 '자기책임' 원칙 하에 간단한 서명만 받고 상품 가입이 가능하도록 절차를 간소화시키고, 그렇게 아낀 시간을 일반 투자자들 대상 상품 설명에 더 많이 할애하도록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금융소비자의 '책임 투자'에 대한 인식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원금 손실 볼 확률은 제로에요"와 같은 달콤한 말만 믿고 투자했다면, 이는 전형적인 '묻지마 투자'이다. 수익이 있는 곳엔 언제나 위험도 뒤따르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투자 시에는 그만큼 충분한 공부도 필요하다. 은행이라고 무조건 원금 100%가 보장이 되는 예·적금만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에서 펀드를 취급한 것은 1998년이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ELS 판매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20년 넘게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을 팔아왔는데, 이제 와서 ‘은행은 안전할 줄 알았다'라고 마냥 외칠 순 없다는 것이다. 금융교육의 확대와 함께 금융소비자들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김보미기자 bm0626@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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