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나빠지고, 특히 황인범과 이강인이 나빠지는 팀… 선수 탓이 아닌 이유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경기를 거듭할수록 모든 미드필더의 경기력은 한결같이 나빠지는 곡선을 그렸다. 황인범뿐 아니라 이강인도 그랬고, 체력 문제가 심하지 않은 이재성과 박용우도 마찬가지였다. 미드필더 전원의 동반 부진이라는 뚜렷한 경향이 발견된다면 이건 각 선수가 아니라 팀과 전술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을 치른 한국이 요르단에 0-2로 패배하며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우승 도전은 64년째 실패했다.
이번 대회 한국의 경기력과 결과 모두 갈수록 떨어지는 분명한 양상을 보였다. 부진한 경기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쓰면서 16강과 8강을 통과했기에 응원하는 입장에서 보는 기쁨은 더 컸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제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에 누린 기쁨이었다. 한국이 90분 내에 승리한 경기는 첫 경기였고, 이후 4경기는 90분 동안 무승부였으며 토너먼트의 경우 승부차기나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경기는 패배했다. 점수뿐 아니라 경기력 측면에서도 갈수록 떨어지는 양상은 마찬가지였다.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 한국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가장 빛났고, 이후 경기를 거듭할수록 길을 잃었다. 체력 저하와 오락가락하는 전술, 상대팀에 단점이 들통난 뒤에도 조치하지 않는 안이함이 겹쳤다.
단적인 예가 미드필더들이다. 황인범은 이미 더 큰 무대인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모든 참가선수 중 공격참여도 최상위권을 기록한 바 있다. 황인범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전술이 갖춰진다면 세계 수준의 활약을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번 대회 초반에도 한국 선수 중 가장 돋보인 게 황인범이었다. 황인범은 한국의 대회 전체 첫 골인 바레인전 선제골을 넣었다. 2차전에서 요르단에 패배할 뻔 했을 때도 황인범이 종료 직전 득점이나 다름 없는 자책골 유도를 해내 팀을 구했다. 대회 초반 주인공은 이강인, 황인범 두 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황인범은 패스미스가 늘어나고 간단한 볼 키핑에도 실패하면서 평소같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토너먼트 막판에는 실점 장면에 연루되는 경우가 잦았다.
이처럼 갈수록 경기력이 떨어지는 현상은 이강인도 마찬가지였다. 이강인은 3골로 한국의 대회 공동 최다골을 기록했다. 1차전 바레인전에서 2골, 조별리그 3차전 말레이시아전 1골을 넣으며 공격 포인트만 봐도 갈수록 위력이 저하됐다.
이강인의 경기력도 갈수록 하락세였다. 대회 초반에는 각 경기마다 초반 탐색전을 좀 진행한 뒤 전반전 중반부터 살아나 한국의 공격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탈락 직전까지도 좋은 전진패스는 여전했지만 문제는 그만큼 무리한 플레이로 공을 빼앗기는 상황도 늘어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초반 두 경기 정도는 상대가 이강인에게서 공을 빼앗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볼 키핑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경기에서는 상대 수비가 다 정돈되어 있는데 한가운데로 돌파를 시도하려다 공을 빼앗기는 상황이 거푸 나왔다. 바로 옆의 선수에게 쉽게 줄 수 있는데, 간단한 패스보다 더 치명적인 플레이를 하려고 의욕을 부리다 손해를 보는 장면들이었다.
결국 한국의 대회 마지막 실점은, 초반 가장 돋보였던 이강인과 황인범의 실책이 겹치며 나왔다. 이강인의 무리한 볼 키핑과 겨우 빼준 공을 리턴해주지 못한 황인범의 패스미스가 겹쳤다. 급히 수비 복귀한 황인범이 무리하게 수비하려다 넘어지는 장면도 좋을 때 같지는 않았다.
선수들이 갈수록 경기 운영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건, 팀이 갈수록 방향성을 상실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술가와 거리가 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성향상 세부적인 전술지시는 생략하더라도 팀이 어떤 방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지 대략의 콘셉트는 공유되어야 했는데, 이조차 없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대회 초반에는 선수들이 과도한 부담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황인범이 초반 2경기 연속으로 득점 상황을 만들 수 있었던 건 공격진이 서로 이용하는 플레이가 부족한 상황에서 그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기 위해 황인범이 자주 전진했기 때문이었다. 황인범은 경기 중 중앙 미드필더였다가 공격형 미드필더도 되어야 하는 고난이도 역할을 소화했고, 나중에는 후방 플레이메이커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해야 할 때와 과감한 플레이를 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게 갈수록 힘들어졌다.
특히 요르단전 후반에 공격을 강화하려고 황인범, 이강인을 중앙 미드필더 조합으로 배치한 건 최악의 수였다. 둘 다 판단력 면에서 최악으로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둘 다 득점력이 있는데 최전방에서 너무 먼 곳으로 빼놓는 조치이기도 했다.
황인범과 이강인을 중앙에 놓으면서 나름의 노림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두 선수의 킥력을 활용해 좌우로 패스를 많이 벌려주게 하고,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린 뒤, 헤딩 경합 후 흘러나오는 공을 이강인이 전진하며 마무리하게 해 주면 중앙 배치도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방안 외에도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승부수의 종류는 많다. 하지만 이강인을 일단 중앙에 놓은 뒤 알아서 운영을 해 달라고 요구하자 무리한 플레이만 나왔다.
평소 실력이나, 이번 대회 초반 모습이나 아시안컵 최고였던 선수들이 이강인과 황인범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4강까지 올라갔을 때 심각하게 저하된 경기력으로 마지막 실점의 빌미가 됐다. 이들만큼 큰 부담으로 눈에 띄진 않았지만 선발과 교체를 오갔던 이재성도 마찬가지였다. 대회 초반부터 경기력이 좋지 못했던 박용우는 옆에서 활약해주던 동료들까지 부진하자 더 큰 침체에 빠졌다.
미드필더 중 한두 명이 아니라 주전급 전원이 일제히 하향세를 탔다는 건 개인이 아닌 팀 차원의 문제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클린스만 감독이 4강이라는 표면적 결과와 극적인 드라마들에 취해 별 문제가 없었다고 오판한다면, 유럽파 미드필더들의 본실력은 A매치에서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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