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이 책임 회피할 때, 손흥민과 이강인은 '채찍질' 자처했다

김희준 기자 2024. 2. 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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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왼쪽), 이강인(오른쪽, 이상 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언제나처럼 두루뭉술한 말들로 책임을 회피할 때, 손흥민과 이강인은 채찍질을 자처했다.


7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을 치른 한국이 요르단에 0-2로 패배하며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참패였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요르단보다 체격 조건이 우월하지 못했고, 연장전을 두 번 연속 치르는 등 체력에서도 요르단보다 불리한 측면이 있었다. 게다가 조별리그에서 맞붙을 때 요르단 에이스였던 무사 알타마리를 잘 틀어막은 김민재가 경고 누적 징계로 결장했다는 점도 대표팀에 악재였다.


이 모든 건 핑계에 불과하다. 결국 전술적으로 완패했기 때문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김영권, 정승현 센터백 조합에 박용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워 수비 안정감을 도모했지만 단순한 포지션 배열만 했을 뿐이었다. 실제 선수들의 움직임은 세부적인 전술 지시가 없었다는 듯 단순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에 가까웠다. 조별리그에서 이미 파괴력이 입증된 알타마리나 야잔 알나이마트 등에 선수를 지정해 마크하거나 협력수비를 하는 경우도 좀처럼 없었다.


선수단 운영에서도 수준 차이가 났다. 후세인 아모타 요르단 감독은 스트라이커 알리 올완과 센터백 알리 아잘린 공백을 적절한 선발진 구성으로 메운 건 물론 실리적인 경기 운영으로 체력을 아낀 뒤 후반 막판 연속된 교체로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김민재 공백을 전술적으로 전혀 메우지 못한 데다 후반 막판에야 젊은 공격수를 투입하고 교체카드를 3장만 사용한 클린스만 감독과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위르겐 클린스만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에도 쉽사리 실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감독으로서 원했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분석하고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많은 드라마도 썼다. 사우디아라비아전과 호주전도 피말리는 경기였고, 그 경기들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며 논점을 흐리고, "이번 대회에서 우리가 얼마나 어려운 조였나" 되물으며 우승을 목표로 했던 걸 지우고 조별리그 통과 자체를 큰 성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또한 사퇴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북중미 월드컵 예선을 치러야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번 대회를 잘 분석해서 앞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라며 흘려내고, 경기 후와 기자회견에서 계속 웃은 것에 대해서는 "상대팀이 오늘같이 좋은 경기력으로 승리하면 당연히 축하해줘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클린스만 감독은 유려한 언행으로 책임을 회피했다. 오히려 그 몫을 선수들이 떠안았다. 주장으로서 모든 경기를 풀타임 소화한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팀을 이끄는 데 부족함을 느낀 토너먼트였다. 많은 선수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성적을 가져오지 못해서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며 "선수들은 잘못한 게 없고 질책을 받으면 내가 받아야한다"고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클린스만 감독을 두둔하기도 한 손흥민은 체력 부담에 대한 질문에도 "사실 지금 상황을 회피하는 가장 좋은 답변이 있는데 그게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모든 짐을 자신에게 지웠다. "내가 앞으로 대표팀을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할 만큼 정신적으로 무너진 상황에서도 주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을 꺼냈다.


이강인(남자 축구대표팀). 서형권 기자

클린스만호 핵심이자 이번 대회 투지를 보여준 이강인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부분에서 발전하고 바뀌어야 한다. 내가 첫 번째가 돼야 한다"며 개인이 아닌 팀으로서 비판받아야 할 경기력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 질타하고 싶다면 나를 질타했으면 좋겠다"며 선수들이 받을 상처를 대신 감내하겠다는 의젓한 태도도 보였다.


감독이 쉽사리 책임을 논하지 않을 때 선수들은 먼저 나서서 자신을 우선 비판해달라며 책임을 짊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풍경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대회 4강은 감독이 만들어낸 게 아닌 선수들이 일궈낸 성과에 가까웠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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