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삿포로 눈축제에서 '대전 0시 축제'를 읽는다
세계 3대 축제 명성에 年 270만명 방문
눈 많은 지리적 특성 살린 참여형 축제
‘대전 0시 축제’ 연계·발전 방향 모색
지난 4일 눈이 소복이 쌓인 일본 삿포로시의 도심에서 어깨를 맞닿으며 사람들이 길을 걷는다. 눈길을 따라 어정쩡하게 걷는 이들의 표정은 일그러짐 없이 모두 밝고 해맑다. 혹여 미끄러운 길에서 엉덩방아를 찧을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저마다 휴대전화나 고가의 영상 장비로 주변 경관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도심 전체가 새하얀 눈 세상이 된 일본 삿포로시 그리고 삿포로 눈축제 현장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날 일본 삿포로에서 ‘눈축제’ 개막식이 열렸다. 눈축제는 1950년에 시작해 올해로 74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삿포로 눈축제는 세계 3대 축제로도 손꼽힌다. 삿포로는 여느 지역보다 오랫동안 많은 눈이 내려 도심에서 설경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끈다. 이를 방증하듯 눈축제에는 해마다 평균 27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것으로 추산된다.
통상 삿포로에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린다. 적설량은 해마다 다르겠지만, 눈이 내리는 기간 기본적으로 어른 허리춤을 넘어서는 눈높이가 일상적이라는 것이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삿포로시의 연간 예산 대부분이 눈을 치우는 데 쓰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눈축제에서 관람할 수 있는 ‘설상조각’은 세계인이 삿포로를 찾게 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삿포로시는 많은 눈이 내리는 이곳 지역 특성을 살려, 설상조각으로 축제를 즐기는 자리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과거 이곳 주민들이 소규모로 즐겨온 지역의 설상 문화가 삿포로 동계올림픽(1972년)을 계기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현재의 눈축제로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꿔 말해 눈축제는 태생 자체가 지역 주민이 직접 참여해 즐기는 참여형 축제였다. 이를 토대로 현재도 눈축제가 열리는 오도리 공원에선 총 11개 구간(전체 1.5㎞) 중 2개 구간을 일반 시민 조각가에 맡겨 자율적으로 설상조각을 만들 수 있도록 한다. 나머지 구역은 기업 투자로 조성한 설상조각 전시 및 체험 공간과 국제 설상조각 대회 참가자들의 공간 등으로 채워진다.
이 중 기업 투자로 조성된 축제 공간은 대형 설상조각 작품 전시와 함께 관람객이 설상 위에서 미끄럼틀 등을 체험할 수 있게 해 눈길을 끈다. 또 축제 현장 곳곳에 기업 홍보 겸 먹을거리 부스가 설치돼 따뜻한 커피와 라면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관람객이 눈축제에서 눈으로 설상조각을 즐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체험과 먹을거리로 축제의 재미와 여유를 두루 챙길 수 있게 한 것이다.
설상조각 대회는 눈축제의 백미다. 이미 만들어진 설상조각을 관람하는 재미도 있지만, 설상조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관람객이 오롯이 관찰할 수 있는 것도 대회 관람의 묘미다. 올해 설상조각 대회는 개막식이 열리기 하루 전인 3일부터 시작해 7일 시상식과 함께 막을 내린다. 대회 기간 조각된 설상은 시상식 후 이튿날인 8일 중장비를 동원해 철거될 예정이다. 설상조각 철거 과정에도 많은 인파가 모인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대전에선 한남대, 목원대, 충남대 출신의 설상조각가가 해마다 대학별로 1개 팀을 구성해 순번대로 돌아가며 대회에 참가한다. 올해는 한남대 출신 설상조각가 팀이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이 팀은 2014년 대회에서 우승한 전력이 있다. 한남대 팀의 맏형 김기엽씨(47)는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회 분위기를 즐기면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몰두하는 게 먼저"라며 "남은 대회 기간, 팀원 모두가 웃고 즐기면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삿포로는 대전과 자매도시로, 2010년부터 교류를 지속해 오고 있다. 특히 올해 눈축제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경제사절단이 직접 현장을 찾아 설상조각 대회 참가 팀을 격려하고, 눈축제 현장에서 ‘대전 0시 축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장은 “삿포로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리적 특성과 과거부터 이어져 온 지역 문화를 반영해 현재의 눈축제 명맥을 잇고 있다”며 “대전시는 삿포로시와 자매도시로, 상대 도시와의 문화·경제 등 분야 교류를 확대해 양 도시가 상호 발전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삿포로가 겨울철 눈축제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것처럼 ‘대전 0시 축제’가 여름철 대전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축제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삿포로 눈축제가 장기간 유지되고 활성화할 수 있었던 요소들을 찾아 ‘대전 0시 축제’에 접목·응용하는 방안을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이광영 주삿포로 한국총영사관 서기관은 “최근 들어 대전시가 삿포로시와 적극적인 우호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현지에서도 고무적”이라며 "자매결연을 한 후부터 줄곧 교류가 있었지만, 지난해부터는 양 도시 시장과 경제사절단이 서로 왕래하는 등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교류의 폭도 넓어지는 모양새”라고 전했다.
삿포로=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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