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1%라도 집 안 사"…분위기 바뀐 특례대출[집톡]
주택 구매 많았던 특례보금자리론과 사뭇 달라
집값 하락, 실거주 의무, 대상 제한이 이유
"연 1~3%대 금리의 신생아 특례대출로 집은 안 샀다."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은 이들의 대부분이 주택구입보다 대출 갈아타기(대환대출)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연 4% 고정금리로 출시돼 주택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특례보금자리가 새로 집을 사는데 집중됐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주택 가격이 내려가는 중이라 아무리 저리의 특례대출을 해주더라도 집을 사는 걸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신생아 특례대출은 지난 4일까지 일주일 만에 총 2조 4765억원(9631건)이 접수됐다. 이중 ‘디딤돌 구입자금 대출’은 2조945억원(7588건),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은 3820억원(2043건)으로 나타났다.
구입자금 76.7%가 대출 갈아타기
디딤돌 구입자금 대출액 중 대출 갈아타기용으로 쓰인 금액은 1조 6061억원(6069건)이었다. 전체 대출액 대비 액수로는 76.7%, 건수로는 80%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나머지인 4884억원(1519건)이 신규 주택 구입 용도로 쓰였다. 액수는 23.3%, 건수는 20%에 그쳤다.
정부가 출시한 같은 특례대출이지만 신규 주택 수요가 많았던 특례보금자리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례보금자리론의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실제 대출로 연결된 유효 신청금액은 43조4000억원(총 18만1971건)에 달했다. 용도를 보면 신규 주택 구입이 전체 신청액의 65.5%(28조4137억원)로 가장 많았다. 대환대출은 27.8%(12조647억원), 임차보증금 반환은 2조9023억원(6.7%)에 그쳤다.
당시 특례보금자리론이 새로 집을 사는 용도로 대거 투입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같은 해 3분기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특례보금자리론이 가계부채 증가 원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특례보금자리가 주택 구입에 투입되며 집값 상승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 종합주택 매매가격변동률(전달 대비)이 -1.86%에서 같은 해 9월에 0.42%까지 올랐다. 이 가격 상승을 특례보금자리가 이끌었다는 뜻이다.
특례대출은 정부가 서민들을 대상으로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훨씬 낮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같은 한도 규제를 없앤 대출을 말한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내놨고, 특례보금자리론은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만들었다. 전자는 출산 장려책 성격이 짙지만, 후자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이 목적이었다. 공급규모도 신생아 특례대출(26조6000억원)이 특례보금자리론(43조4000억원)보다 작다.
신생아 특례대출자들이 내 집 마련에 나서지 않는 것은 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작고, 실거주 의무를 져야하는데다, 시장 침체가 겹친 여파로 분석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부동산 시장이 지난해 4분기부터 재조정기에 접어들어서 금리 인하 시기만 다들 지켜보고 있다"며 "집값이 떨어질 때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에 주택 구입보다는 기존에 높은 금리로 대출받은 것을 갈아타는 게 훨씬 매력적일 것"이라고 했다.
함 랩장은 "특례보금자리론은 실거주 의무가 없었고, 대상도 소득이나 주택가격 조건만 맞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대출받을 수 있었다"며 "그런데 신생아 특례대출은 실거주 의무가 있어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게 근본적으로 안 되고, 대상도 최근 1~2년 사이에 아이를 출산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해서 훨씬 제한적"이라고 했다.
현재 부동산 시장에서 특례대출은 집값을 부채질하는 것보다 추가 하락을 막는 방어막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값이 바닥일 때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신생아 특례대출은 9억원 이하 중저가 매물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하락을 막는 방패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지난 1월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건수가 약 2000건 정도가 될 거 같은데, 예견하긴 이르긴 하나 앞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아 사는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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