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면 노동자가 작업 중지, 대법의 의미있는 판결
[이태진 ]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은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자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의 작업중지가 도입된 지 40년이 넘었지만, 일터에서는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로써 작동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사고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누가 죽지도 않았는데'라는 말과 함께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징계와 손배 가압류를 남발한다. 법원 역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의 법상 목적인 산업재해 예방보다는 사고 발생 결과 유무나 피해 정도를 사후적으로 판단하면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왔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 근로자가 작업을 중지할 수 있도록 하여 현행 규정상 불명확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명확히 도입하였습니다.
- 제20대 국회 제365회 국회(임시회) 국회본회의 회의록
특히 그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근로자가 작업중지 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해서 급박한 위험상황에서도 작업중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임
-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 주요개정사항 설명자료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 국회와 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명확하게 하여 사고를 예방하고 중대재해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된 이후 작업중지권과 관련해 노동자들은 징계와 손배 가압류 압박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졌을까?
▲ 티오비스 누출 사건 현장 지도. 누출 원인 KOC 공장과 인근 사업장 및 사원기숙사의 거리 |
ⓒ 금속노조 법률원 이두규 변호사 |
지역주민과 노동자 대피에 대한 이중잣대
2016년 7월 16일 세종 부강공단에서 티오비스가 300L 이상 노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티오비스는 공기 중에서 산소와 결합하면 황화수소로 변하는데, 황화수소는 사람에게 심각한 치명상을 일으킬 수 있는 화학물질이다.
당시 화학물질 노출 사고를 통제하였던 세종소방본부는 반경 500m 내 지역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하였다. 그런데 부강공단 관리사무소에는 공단 입주 사업장에 대피 안내를 하도록 협조를 구했다. 화학물질 노출에 대한 위험은 지역 주민이나 공장 안의 노동자들이나 똑같은데도 재난지휘통제소인 세종소방본부는 기업들의 민원을 우려하여 직접적 대피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법원이 위험을 판단함에 있어 소방본부의 대피 명령이 직접적으로 콘티넨탈 사업장에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마치 공장에서의 위험은 없는 것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대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지 않았으며, 사업주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실관계를 왜곡하고 황화수소 노출로 인한 객관적인 피해마저 부정하면서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심지어 정부가 화학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고 추가적인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대응 매뉴얼조차 법원은 확인하지 않았다. 화학 사고 대응의 기본 매뉴얼과 정반대로 노동자가 직접 사고 장소로 가서 위험을 확인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전가했다.
금속노조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지회 조남덕 지회장은 119 소방본부에 직접 전화해 사고를 재차 확인하고 대피방송까지 했다는 것을 듣고 사업주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또한 고용노동부 위험상황 신고 전화를 통해서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와 대책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전노동청 산업안전감독관이 직접 사업장에 방문하여 사업주에게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 대피 권고를 했었다. 감독관이 작업중지 명령을 즉시 내리지 못한 것은 현재의 법체계상 화학 사고가 콘티넨탈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법체계의 한계, 미비점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개선해야 할 과제이지 그 자체로 위험을 부정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조남덕 지회장은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로 인해서 7년간의 법정 다툼을 이어왔고 징계로 인한 고통을 감내해 왔다.
작업중지권 대법원 판결의 의미
지난해 11월 9일 대법원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인근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해 동료들을 대피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조남덕 지회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근로자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긴급 대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여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따라서 이 사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10m 이상의 지점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아니하였더라도 황화수소의 분산으로 인한 피해 범위를 명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고,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것 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사건 누출사고가 발생한 지 24시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오심, 어지럼증,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다수 발생하였고, 누출 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던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피고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콘티넨탈 작업중지권 대법 판결은 작업중지권 행사의 주체와 목적을 명확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험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해당 사업장이 아니라 화학물질 노출사고 등 외부에서 발생하였다 하더라도 노동자에게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대피 넘어 위험 거부하고 개선하는 온전한 작업중지권 부여하라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권리인 노동자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징계와 손배 가압류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감내하거나 묵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헌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규정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대법원도 이를 인정하고 작업중지가 정당하다고 판결해 파기환송을 한 것이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후 일부 기업들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 상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의 내용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원활한 행사를 독려하고 작업중지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노동부는 2022년 관계부처 합동회의를 통해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를 발표하면서 작업중지권을 비롯한 노동자 참여권 보장이 산업재해 예방에 필수적이라는 인식 하에 2023년 1월까지 작업중지권의 구체적 범위·요건 등에 관한 매뉴얼을 제작하고, 우수기업 선정 시 노동자의 작업중지 활용 실적을 반영하겠다고 하였다. 매뉴얼의 공정성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선 노동조합과 안전보건단체 등 시민사회와 충분한 토론과 숙의가 필요하다.
또한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 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과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도 작업중지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별노동자들이 위험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고 고용관계로 인해서 사용을 손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위험으로부터 대피한 이후 안전이 확보되기 위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개선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태진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보건국장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4년 2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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