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50대, 20대... 대화가 안 통하는 결정적 이유
[구교형 기자]
▲ 현충일인 2023년 6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자유통일당 회원들이 주사파 척결 집회를 열고 있다. |
ⓒ 연합뉴스 |
흔히 이들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로 불리며 30~40년 이상 격렬하게 대립했고, 지금도 양당정치 중심의 현장과 사회 기반을 놓고 여론을 양분하고 있다. 총선을 수개월 앞두고 해방정국과 같은 정치테러까지 등장하며 서로 말도 못 붙일 것 같은 살벌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도 공통점은 있다. 국가와 민족, 평화와 안보, 이념이나 계급 같은 소위 거대과제에 집중해 왔다. 이는 16세기 이후 서구 중심의 근현대가 이끌어 온 아주 전형적인 주제들이다. 근현대는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불가능한 환경을 개척해 나가는 생산성, 경제성, 합리성이 최고인 시대였다. 국가나 민족, 이념이나 계급 같은 거대과제에 개인은 희생하고 소수는 침묵해야 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만만치 않고 대하기 까다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개인의 생각과 인생이 소중하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공공연히 인생의 목표로 내세운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 '욜로'(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 등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기보다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며 최대한 누리겠다는 뜻이다. 무자녀 맞벌이 부부를 뜻하는 딩크(Double Income No Kids)도 그렇다.
'모두와 전부'보다, 나의 나됨을 확인하고, 자기 인생에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성공하고 잘살고 올바른 것이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실천이 과제였다면, 이제는 '무엇이 성공이며, 잘사는 게 뭐냐?', '무엇이 정의이고, 공정이냐?'고 물으며, 기성세대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래서 기성세대는 지금과 같은 변화를 '이기주의'라고 쉽게 속단한다. 자기밖에 모르고 인류, 세계, 조국 등 보편적 거대과제에 관심 없다고들 한다. 얼핏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낯섦의 거부감을 넘어 시대변화의 의미를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의 변화를 못마땅하게 보는 것은 항상 있는 일이니 말이다. 1980~90년대에도 어른들은 늘 '요즘 젊은이들'이 철딱서니 없고, 이기적이라고 했었다.
▲ 2023년 11월 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적인 지상전을 규탄하는 집회가 이스라엘 대사관 부근인 서울 청계광장에서 아시아의친구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노동자연대청년학생그룹 등 국내단체롸 주한 아랍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 권우성 |
경제발전, 국가안보도 일단 지구촌이 남아 있어야 가능한 얘기다. 그래서 젊을수록 지구촌 전체의 존립 위기인 기후, 생태 문제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녹색에 대해 민감한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또, 20세기까지만 해도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마치 부차적 존재처럼 취급해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의 공감과 협조를 얻지 못하면 인류의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드디어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 공감하든 반대하든, 페미니즘과 성 소수자 등 젠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발전과 성장, 정복, 발견이 목표라고 믿던 시대에서 생명, 협력과 공존 등이 가치인 시대로 급격히 전환하고 있다. 예전에는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과 한민족 번영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세계적 신냉전 구축과 더불어 우크라이나, 중동 등 중요한 전략지점에서 잇따라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지구촌 평화가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직결되어 있음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들은 발전국가와 민주국가로 양분되는 사회, 보수와 진보로 쪼개진 거대 양당 중심의 대립 정치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세대다.
각각의 주제들은 모두 당대의 시각, 각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학자들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말로 설명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 그러나 물이라는 단어를 몰라도 물놀이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용어를 잘 몰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미 깊이 체감하고 있다.
▲ 2024년 새해를 맞은 1월 1일 오전 서울 북한산 족두리봉에서 해맞이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있다. |
ⓒ 국립공원 산악안전지원단 |
가난 극복과 민주주의 발전 등은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식민지 청산과 분단체제 극복 과제 등은 70년이 넘도록 크게 미진하여 지금도 사회발전과 번영을 번번이 가로막고 있다. 그런 가운데 21세기를 맞아 이제 국력 세계 10대 국가, 세계적 한류로 겉은 화려하지만, '지속가능성'과 '선순환적 생태계'를 목표로 시급히 전환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살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하는 새 세대를 만난다.
당대 시절의 체험을 겪은 사람들은 자기 시절의 과제가 가장 커 보인다. 그러나 각 세대 체험 사이에 무려 70여 년의 엄청난 시차가 있다는 데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 또한 이전 가치나 주제가 한 번에 극복되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며, 새로운 시대정신도 물 흐르듯이 쉽게 자리 잡고 바로 무르익지도 않는다. 마치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좁은 한반도에서 한꺼번에 충돌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급격한 시대 전환에 따른 과도기의 혼란과 갈등이 상당 기간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다고 각자 알아서 성취해 나가는 각자도생은 답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시작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모든 이야기는 진공상태의 이론이나,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관심사 정도가 아니다.
구체적, 역사적, 시대적 상황 속에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며 서로 긴장,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공생하는 이야기다. 그 과도기의 혼란을 어떻게 극복하고, 우리 자신과 시대, 역사의 발전으로 만들어갈 것인지 함께 고민해 보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도서 3장 11~13,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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