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독살하려 해"… 대법, 살인·방화 '망상장애' 60대 징역 20년
주변인들이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져 이웃집에 살던 전 직장동료를 살해하고 자기 집에 불을 지른 60대에게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64)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5년간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원심의 양형판단에 죄형균형의 원칙 내지 책임주의 원칙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 위법이 있다는 취지의 주장은 결국 양형부당 주장에 해당한다"며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들과의 관계, 이 사건 각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김씨는 2017년부터 자신의 여동생 등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독이 묻은 물건을 주거나 독이 든 음식을 먹여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다는 망상을 가져왔다.
2021년 5월부터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서 기사로 근무했던 김씨는 2022년 4월경부터 함께 근무하던 A씨가 자신에게 독이 든 음식을 주거나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와 음식에 독을 타고 있다는 망상을 갖게 됐다. A씨는 김씨와 같은 다세대주택에 입주해 살고 있어 서로 이웃으로 교류하며 지냈다.
또 김씨는 또 다른 동료기사 B씨가 자신에게 독이 묻은 이불을 주는 바람에 건강이 악화돼 2022년 5월 회사에서 쫓겨났다는 생각을 갖게 돼 A씨와 B씨에 대한 악감정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2023년 1월 8일 김씨는 A씨의 집에서 A씨와 대화하던 중 "B씨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A씨가 "그러지 마라, B씨를 죽여서 뭐하냐"라고 얘기하자 'A씨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B씨와 함께 나를 독살하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A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김씨는 오후 8시36분경 같은 주택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평소 다른 사람의 침입에 대비해 안방 바닥에 놓아뒀던 망치를 챙겨서 다시 A씨의 집을 찾아갔다.
A씨와 마주친 김씨는 "누구에게 사주를 받았냐? 말해라"라고 말하면서 망치로 A씨의 머리와 어깨를 여러 차례 내리쳤다. A씨를 끌고 방 안으로 끌고 간 김씨는 A씨의 몸 위에 올라타 "너에게 사주한 사람이 누구냐? 말을 해라. 말하면 살려주겠다. 말하지 않으면 넌 죽어야 돼"라고 말하면서 두 손으로 A씨의 목을 졸랐고, A씨가 "사주한 사람 없다"고 말하자 다시 망치로 A씨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쳐 두부 손상 등으로 그 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한편 김씨는 입주 당시 자신의 집 현관문과 방문에 추가 잠금장치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집주인 C씨가 이를 저지하자 C씨도 A씨와 B씨를 도와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며 평소 악감정을 가져왔다.
A씨를 살해한 뒤 김씨는 인천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 집으로 도망가기 전 A씨를 도와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 C씨에게 앙갚음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같은 날 오후 11시경 싱크대 하부장에 보관하고 있던 휘발유가 든 패트병 2개를 꺼내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깔려있는 매트리스 위에 이불과 옷가지 등을 쌓아놓고 그 위에 휘발유를 뿌린 다음, 부엌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종이에 불을 붙여 위 휘발유가 뿌려진 곳에 올려놓아 불이 방 벽면, 천장 등 방 안 전체에 번지게 했다.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현주건조물에 방화를 한 경우 일반 방화죄보다 훨씬 무겁게 처벌된다.
김씨는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피해자 등이 사주를 받고 자신을 살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김씨의 살인 혐의와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지만, 김씨가 망상장애에 빠진 심신미약 상태라는 점을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5년 간의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전 직장동료이자 이웃인 피해자를 망치로 여러 차례 내려쳐서 살해하고, 야간에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 다세대주택에 방화한 사안으로, 범행의 내용과 방법, 그 잔혹성에 비춰 죄책이 매우 중하다"라면서도 "다만, 피고인이 망상장애로 인한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르고 현재까지도 비슷한 정신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에게 10년 전에 벌금형으로 처벌받은 외에 다른 전과가 없는 점 등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반면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청구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먼저 대법원 판례를 원용해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살인범죄를 다시 범할 위험성'이라 함은 재범할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고 피부착명령청구자가 장래에 다시 살인범죄를 범해 법적 평온을 깨뜨릴 상당한 개연성이 있음을 의미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의 부착을 명할 정도로 장래에 다시 살인범죄를 범해 법적 평온을 깨뜨릴 상당한 개연성이 있음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검사와 김씨 모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도 2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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