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마음을 만들었다

김동민 2024. 2. 7.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화생물학자 케빈 랠런드 지음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김동민 기자]

문화는 마음의 산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면서 근원적으로 유전자의 기능이다. 따라서 마음과 문화의 관계는 유전자와 문화의 관계와 같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진화심리학과 인간행동생태학,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의 세 가지 입장이 있다.

진화심리학은 유전자 결정론에 가까운데, 인간의 마음은 200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본다. 진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신석기혁명 이후 1만 년의 세월로는 유전자의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는다.

구석기시대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현대의 인류는 지방과 단백질의 과다 섭취로 각종 성인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강력한 증거가 된다. 생존을 위해 빠른 판단이 필요했던 때에 뇌에 자리를 잡은 직관의 오류도 해당된다. 이른바 선천성을 강조하는 생득론(生得論)이다.

진화심리학에 대립되는 입장이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이다. 양육과 짝짓기에는 유전자의 영향이 여전히 강력하지만 문화는 다르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지배에 문화의 대항적 역할을 덧붙였으니 둘 사이에서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 같다. <본성과 양육>의 저자 리들리(Matt Ridley)와 <빈 서판>의 핑커(Steven Pinker)는 공진화 이론에 가깝다.

진화생물학자 케빈 랠런드의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가, 케빈 랠런드(지은이),김준홍(옮긴이)
ⓒ 동아시아
 
진화생물학자 케빈 랠런드(Kevin Laland, 아래 랠런드)의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가>는 공진화 이론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기본적으로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이론이지만, 대등한 상호작용이 아니라 문화가 주도적으로 마음을 만들었다는 입장이다. 인류가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자연선택에 의해 지능이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포항공대 김준홍 교수는 앞서 리처슨과 보이드의 <유전자만이 아니다>를 번역하기도 했다. 인류학자인 두 사람의 책은 인류의 진화를 얘기할 때 문화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는 느슨한 유전자-문화 공진화 이론에 해당한다. 그에 비해 랠런드는 아예 문화가 마음 유전자의 진화를 주도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고, 점점 더 도구의 다양성과 복잡성이 증대해짐에 따라(이것이 문화다) 뇌의 역할과 기능이 많아지면서 뇌의 용량이 커지고, 그럼으로써 지능의 향상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인간 종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는 지적 능력은 문화가 핵심 역할을 하는 공진화적 되먹임(co-evolutionary feedback)이라는 소용돌이로부터 형성된 것이다."(16쪽) 랠런드는 다양한 실험과 수학적 모델을 동원해 이 가설을 증명한다. 

문화는 사회과학에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언론학에서는 대중문화 연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과학에서 다루는 문화는 피상적이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핑커가 비판한 빈 서판(Blank Slate)의 입장에 서 있다. 인간의 본성은 하얀 백지 상태로 태어나서 오로지 경험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로크의 주장을 계승한다. 현대 사회학의 기틀을 다진 뒤르켐은 유전자의 기능을 부정하면서 경험만을 강조했다.

19세기 후반 일군의 철학자들은 자연과학의 기세에 대응해 '문화과학'을 주창했다. 신칸트학파에 해당하는 리케르트는 빈델반트를 계승하는 논리로 <문화과학과 자연과학>이란 책을 내놓았다. 자연과학과 관계없이 역사와 문화도 하나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이후로 문화 연구는 자연과학과 단절되었다.

그 경향은 짐멜과 후설을 거쳐 베버에까지 이어진다. 오늘날 사회과학의 문화 이론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이다. 이제는 지식의 융합 차원에서 사회과학이 '문화과학과 자연과학'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의 성과를 반영할 때가 되었다.

도구 만들기, 모방, 가르침과 학습, 언어의 발생, 뇌 지능 향상의 공진화

랠런드는 문화가 마음을 만들었다는 관점의 연장선에서 언어의 발생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모방 행위, 새로운 도구의 제작과 사용 방법, 식량획득 기술, 사회적 신호, 구애 의식, 약물 치료법, 몸짓 등 문화적 변형들의 전수를 위해 가르침(teaching)과 학습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언어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언어는 가르침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언어는 본래 가르치기 위해 진화했으며, 특히 가까운 혈족을 가르치기 위해 진화했다."(253쪽)

김준홍 교수는 <유전자만이 아니다>의 '옮긴이 서문'에서 "진화사회과학은 …… 진화론으로부터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을 체계적으로 검증하고자 했다"라고 했다. 진화사회과학이라는 것은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입장을 일컫는다. 김준홍은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의 '옮긴이 후기'에서 1990년대에 각광을 받던 진화심리학은 해외 학계에서 지지를 잃고 있다고 했다. 그보다는 진화심리학이 생득론에서 공진화 이론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은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의 영역 밖에 있지 않다. 인문사회분야의 문화이론이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도입한다면 내용이 더욱 알차고 풍성해질 것이다. 랠런드는 인간 마음(정신)의 진화를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했다. 미완성 교향곡을 완성해가는 여정에 사회과학도 동참하기를 기대해본다.

"자연선택은 오로지 각 유기체에 의해, 그리고 각 유기체의 이득을 위해 작용하므로,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자질은 완벽해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종의 기원>, 장대익 옮김, 649쪽)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