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예방]딱 한 잔 하고 차 탔는데…시동이 안 걸린다
10㎝ 하얀 스틱 힘껏 불자 측정 표시
대리 측정해도 '운전자 불일치' 시동 잠겨
편집자주 - 매년 10만명 이상이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된다. 음주 교통사고는 1만5000건, 이로 인한 사망자도 해마다 200명 이상 발생한다. 음주운전 대책은 그동안 주로 처벌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8년 국회를 통과한 '윤창호법'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 벤츠 음주운전 사망사건 등 음주운전 및 사고 피해는 끊이지 않는다. 이에 음주운전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음주운전 대책의 실효성을 점검하고 근본적 해법을 2회에 걸쳐 모색해본다.
"띠릉, 측정 결과 정상입니다."
10㎝ 길이의 하얀 스틱에 숨을 있는 힘껏 불어넣자 10초 뒤 스마트폰에 정상이라는 측정 결과가 표시됐다. 이어 '부릉'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시동이 걸렸다.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같은 방식으로 측정해보니 초록색이던 스마트폰 화면이 붉게 변하며 '띠릉'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엔 "측정 결과 비정상입니다"라는 문구와 면허 정지 수준(0.030%)을 훌쩍 넘긴 혈중알코올농도 '0.040%'가 표시됐다. 몇 번이고 시동을 걸어보려 했지만 자동차는 꿈쩍하지 않았다.
대리 측정은 불가능할까.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은 동승자가 대신 스틱을 불자 스마트폰 카메라에 인식된 사용자 얼굴이 '찰칵'하는 효과음과 함께 즉시 관리자 서버로 전송됐다. '운전자 불일치'를 알리는 문구와 함께 시동이 잠겼다. 업체 관계자는 "소주 한 잔도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민감하게 반응해 음주 운전자를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적발할 수 있다"며 "사전에 스마트폰으로 사용자 얼굴과 이름, 차량 번호 등을 등록하므로 대리 측정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10월 본격 시행…예방 효과 있을까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이곳은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를 생산하는 한 스마트 기술 업체다. 오는 10월부터 '5년 이내 2회 이상 음주운전 이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시동 잠금장치 부착이 의무화되면서 막바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란 시동을 걸기 전 운전자의 호흡에 포함된 알코올 농도를 측정해 혈중알코올 농도가 기준치보다 높을 경우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국내에서는 오래전부터 음주운전 전과자를 대상으로 장치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세부 내용에 합의하지 못해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던 지난해 10월 '배승아양 사건' 등 각종 사고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자 잠금장치를 의무로 부착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현재는 경찰청이 행정안전부 등 소관 부처의 의견을 수렴해 하위법령을 정비하고 시범운영 및 시스템 개발 등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등 해당 법안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나라에서는 시동 잠금장치가 음주운전 재범률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1980년대 미국 최초로 시동 잠금장치를 도입했는데, 2015년부터 4년간 로스앤젤레스에서만 6000명이 장치에 적발돼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장치 도입 이후 음주운전 재범률이 70%가량 줄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국내에서도 공항 리무진, 어린이 차량, 장애인 차량 등 일부 특수 차량을 대상으로 장치 부착이 시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현장 반응은 긍정적이다. 한 공항리무진 업체 관계자는 "처음엔 운전기사들 사이에서 '번거롭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1~2주 지나니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좋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며 "장애인과 어린이 등 취약 보호층이 탑승하는 만큼 보호자들의 만족도도 크다"고 말했다.
장치비 200만원…"국비 지원해야" vs "자가 부담해야"
장치 부착에 대해선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장치 비용·부착 대상 등 세부 내용에 대해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의 비용은 200만원대다. 관리비와 수리비를 포함하면 가격은 이보다 올라간다.
당초 '국비 지원'이 논의됐다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빠지면서 '자가 부담'으로 바뀌었다. 즉 음주운전 전과자 가운데 계속해서 운전하고 싶은 이들은 비용을 개인적으로 부담하고 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과도한 제재'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택시, 화물차 운전자 등 생계를 위해 반드시 운전해야 하는 이들의 경우 돈이 없어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는 탓이다.
반대로 한 번 '부착 대상자'가 되면 꽤 높은 가격을 자가 부담해야 하는 만큼 운전자들이 그만큼 음주운전에 대해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일리노이주는 기본적으로 장치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되 연방정부가 지급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운전자를 위해 기금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장비 비용을 모두 개인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자칫 국가의 과도한 개입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러한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장치를 부착하면 특정 혜택을 주는 등의 유인책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치 부착 대상자를 둔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처음부터 '모든 운전자'를 대상으로 기계를 부착해 애초에 범죄자가 양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과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이상 적발된 전과자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갈린다.
해외의 경우 설치 대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음주운전으로 한 차례 이상 적발된 운전자에 대해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대다수 주와 캐나다는 2회 이상의 재범자에 대해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5년 9월부터 모든 버스에 음주운전 시동 잠금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음주운전 전과 여부와 관계없이 장치 부착을 강제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 될 소지가 있다"며 "장비 부착 대상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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