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닿을 수 없는 곳에 손을 뻗으려는 용기

나주석 2024. 2. 7.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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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예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오늘 '안녕하세요'를 수어로 한번 배워보고 같이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작은 이벤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비대위원들은 엉거주춤 수어를 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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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김예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오늘 ‘안녕하세요’를 수어로 한번 배워보고 같이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작은 이벤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주말 사이에 지나간 ‘제4회 수어의 날’을 기념하자는 취지였는데, 김 위원은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을 수어로 능숙하게 선보이며 다른 참석자들에게 따라 해볼 것을 재촉했다. 예상치 못한 제안에 비대위원들은 엉거주춤 수어를 따라 했다.

보기에 따라 달력에 적힌 무슨 무슨 날을 따라 하는 기획성 이벤트 정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속 한 곳에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김 위원은 앞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청각과 촉각에 의지하며 소통하는 시각장애인이, 시각 정보로만 된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를 배운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김 위원이 수어를 익히려면 비장애인이 들이는 노력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 요구된다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다. 김 위원 측 관계자는 "김 위원은 비대위 전날 수화의 날 행사에 갔었는데, 그 전부터 수어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면서도 "아마도 수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의 손등을 만져보며 동작을 익히고, 자세를 교정받는 식으로 배웠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들을 향한 김 위원의 인사가 크게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은 여의도라는 공간이 그동안 보여줬던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말꼬리를 잡으려만 하는, 대화가 사라지고 적의만 남아 있는 좌절감을 주는 우리의 정치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전투를 방불케 하는 극심한 갈등 양상을 보인다. 총선 프레임이라는 미명하에 정치권은 그동안 보여왔던 약간의 ‘예의’마저 벗어던진 채 원색적인 대결 양상을 펼치고 있다. 상대방을 향해 ‘사기꾼’ ‘도둑질’ ‘농단’ 등의 거친 표현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양당은 물론 양당에서 분화된 제3지대까지 공방전에 가세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 간과된 것은 여야가 인식하는 이번 총선의 이슈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국가적 위기 수준의 저출생 문제나 도심 내 자리 잡은 지상철 문제, 하물며 경로당 점심 식사 제공 등과 관련해 여야 모두 문제 해결 의지를 밝혔다는 점은 똑같았다. 다만 누가 더 근본적 해법을 제시하는지, 현실성을 갖췄는지 등을 두고서 경쟁하는 대신 정치권은 ‘정책 베끼기’ 논란으로 이 사안을 대했다. 같은 문제 인식, 접근법이 비슷한 사안조차 ‘누가 누구 공약을 베꼈냐’ 등으로 논란을 치르는 식이 된다면 문제는 누가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김 위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봤다. 청각장애인과 직접 소통할 수도 없는 그는 왜 수어를 배웠을까, 어떻게 공개 현장에서 수어로 인사를 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수어를 따라 해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동작을 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했을까. 김 위원은 청각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당신들을 기억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짓이 상대의 마음에 가닿길 바라며,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한 동작 한 동작을 익혔을 것이다. 극단의 정치를 넘어 정치 테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정치권에 필요한 것은 ‘닿을 수 없는 곳에까지 손을 뻗으려는 용기’가 아닐까. 나주석정치부 차장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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