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 줄이려면 공연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리(re)스테이지②]
"예술의 언어로 기후위기 감각할 수 있도록 해야"
기후위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공연예술 시장 역시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지속 가능한 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움직이는 추세다. 경험과 현장성을 중시하는 공연예술 역시 기후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 공연계에서는 우리보다 먼저 기후위기에 따른 행동에 나섰다. 영국 런던의 연극단체 피그풋 시어터는 2018년부터 자신들의 공연 창제작이 탄소중립을 이루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재활용품으로 무대 세트를 만들고, 작품 안에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하고, 모든 창제작 과정에서의 탄소발자국을 계산하고 기록하면서 기후에 대한 공연을 만들고 있다. 피그풋 시어터 홈페이지에 공연 창제작 과정에서의 탄소절감 방안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영국 런던의 내셔널 시어터는 영국을 대표하는 국립극장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9년 이들은 탄소 중립 기관이 되겠다고 발표하고, 개관한 지 반세기가 지나 노후화된 설비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제작할 때의 탄소 절감뿐만 아니라 건물, 조직의 운영 방식, 제작 방식, 유통까지 모든 것에서 새로운 방법으로 극장을 운영하는 식이다.
예컨대 객석과 로비에는 적은 양의 전기로 더 밝은 빛을 내는 LED 조명을 설치하고, 단열 설비를 정비하는 등 시설 개보수를 통해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였다. 극장 운영에 소요되는 전기는 풍력과 태양력 발전을 통해 조달하고, 빗물 저장 탱크에 모인 빗물을 화장실 용수로 활용하고, 무대 자재 중 절반은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식이다. 이들 역시 매년 구체적인 에너지 절감 목표치를 설정한 후 그 과정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웹사이트에 공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2014년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서커스 단체인 ‘기후를 위한 행동’, 호주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인 ‘클라이마르테’와 비영리 퍼포먼스 콜렉티브인 ‘클라임액츠’ 등이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예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계적인 뮤지컬 핫플레이스 브로드웨이도 공연 산업의 환경 영향을 줄이기 위해 공연전문가와 환경전문가가 함께 브로드웨이 그린 얼라이언스(BGA)라는 단체를 만들어 녹색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몇 년 전부터 해외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작 과정에 있어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일었다. 먼저 2021년 4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는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이 해야 할 역할을 탐색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펼치기 위해 정책혁신소위원회에 ‘기후위기와 예술 정책’ 워킹그룹을 발족했다. 이들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문화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하고 정책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 나간 끝에 ‘지속가능한 공연예술 창제작을 위한 안내서’ ‘문화예술부문 기후위기 대응 사례’ 등의 내용을 담은 ‘문화예술부문의 지속가능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바로 이듬해엔 업계에서 기후위기와 관련해 가장 주목을 끈 작품도 탄생했다. 국립극단이 선보인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이다. 이 작품은 기후위기와 관련한 내용적인 접근은 물론 기획단계에서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산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연계 탄소발자국 절감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이들은 매일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해 기후노트를 제작했다.
이에 따르면, 무대는 국립극단 창고에 보유하고 있는 자재와 대도구를 사용하고, 제작을 하더라도 작화나 페인팅을 하지 않는 등 이후 재활용이 가능한 방법을 택하면서 공연 후 폐기 물품을 만들지 않도록 했다. 조명도 기존의 30%가량을 덜어내고 LED 조명을 활용했고, 의상 역시 국립극단 의상실에서 필요한 의상을 확보하고 개인 의상을 최대한 활용했다. 분장도 비건 재료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고, 인쇄물 제작을 최소화하고 친환경 용지와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다. 연습실 내에서 일회용품 사용도 최소화했다.
국립극단 외에도 고(故) 윤영선의 초고를 재구성해 친환경연극으로 재탄생한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공연 의상과 소품의 90%를 버려진 물품을 모아 재사용했다. 지난해에도 멸종위기종 갈라파고스 땅거북을 소재로 삼은 연극 ‘스고파라갈’, 기후위기를 다룬 강의형 연극 ‘에너지…보이지 않는 언어’, 2023년에서 시작해 2043년 인류의 마지막 날을 담아낸 재난 연극 ‘당신에게 닿는 길’ 등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연극이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공연예술 축제에서도 환경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춘천마임축제는 2022년 이동식 발전차·발전기 대신 친환경 축전시스템 개발, 반영구적 이동식 배전판과 모듈형 전기라인 개발, 쓰레기 없는 축제를 위한 다회용기 사용, 인쇄물 최소화와 새활용 MD 제작 등을 실천했다.
같은 해 의정부음악극축제도 ‘거리로 나온 음악극, 지구를 노래하다’를 주제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축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들은 지속가능성 감독과 환경예술감독을 선임하고 의정부음악극축제 지속가능 실천 선언문, 지속가능성 모니터링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 또 시민들이 공연에서 직접 기후위기를 다루고 대응하는 주체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축제 기간동안 ‘No 플라스틱’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진행했다.
일각에선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공연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많고, 현실적으로 줄이기 어렵다는 논리다. 그러나 단순히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사태를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문화예술의 중요한 역할이다. 국립극단을 비롯해 해당 주제를 내세운 공연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을 이끈 전윤환 연출 역시 “사람을 설득하는 일은 예술의 영역”이라며 “예술의 언어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 기후위기를 예술로 감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나의 위기는 아니더라도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위기라는 것을 감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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