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을 부탁해 티처스>가 끝나서 다행입니다

이지아 2024. 2. 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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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공부에 뒷전인 엄마의 티처스 몰아보기 그 후... 아이들 공부 대신 체력을 얻다

[이지아 기자]

우리집 삼남매는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이 없다. 올해 중 3, 중1에 올라가는 큰아이와 둘째도 물론이고, 본격적인 초등 공부가 시작된다는 4학년에 올라가는 막내까지 받아본 사교육이라곤 태권도와 특공무술 같은 운동 관련이 전부다. 

딱히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내가 살아온 과거와는 다를 거라 생각한 게 컸다. 공부는 그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대변하는 학생의 의무 정도로 여겼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 60점을 맞았을 때도 '90점을 맞고 우는 아이보다 60점을 맞고 웃는 아이가 더 좋다'라고 아이에게 말해줬다. 실제 내 마음이 그랬으니까. 

이런 엄마를 둔 아이들에게 이번 겨울방학은 그야말로 천국에서 보내는 시간과 다름없다. 큰 아이는 하루에 두 권씩 소설책을 읽어 치우고, 남자 아이 두 녀석은 딱 필요한 독서와 숙제와 운동만 하면 자유롭게 게임을 하도록 합의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도 인성 교육 하나만큼은 확실히 시키고 있으니 분명히 자신의 몫을 잘 해내는 성인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이하 티처스)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티처스> 몰아 본 열흘
 
 성적을 부탁해 티처스 포스터
ⓒ 채널A
 
14회로 완결된 <티처스> 시즌1을 보는 데 딱 열흘이 걸렸다. 하루에 한 편, 런닝머신을 하면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라?! 아이들 공부에 관심이 1도 없는 엄마가 보기에도 너무 재밌는 것이다. 덕분에 늘 40분만 하고 말던 런닝머신을 70분씩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날에는 아이들 식사를 준비하면서 또 한 편 보는 식으로 해서 열흘이 걸린 것이다. 아이들 공부에 뒷전인 엄마 입장에서 <티처스>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았다. 

<티처스>의 공식 홈페이지 소개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강사가 도전 학생별로 맞춤 코칭을 해주며 인생의 최고점을 선물해 드립니다. 학생들의 인생을 바꿔줄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설명되어 있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최고의 스타 강사 역시 무조건적인 선행 학습의 맹점을 지적하고, 학원을 쇼핑하듯 다니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성적 그 자체보다는 공부를 대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부모들의 교육 방식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분명 좋은 의도를 갖고 제작한 프로그램이 맞는데 이상하다?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면서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형국이랄까? 나는 처음으로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학원을 안 다녀도 되는 걸까? 예비 중3인데 이 중요한 겨울방학을 그냥 보내도 되는 걸까? 어? 저건 우리 아이 공부 방법인데 저게 최악의 공부 습관이라고? 중학교 때 공부를 못하면 일반고에 못 갈 수도 있는 거였어? 지금이라도 학원을 보내야 하나?'

불안은 점점 크게 자라면서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핸드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이 늘었고, 매일 소설책을 읽는 딸아이를 보면서 '영어 단어라도 좀 외우지'라고 말하고 싶은 소리를 꾹 삼킨다. 
 
 14회로 완결된 <티처스> 시즌1을 보는 데 딱 열흘이 걸렸다.
ⓒ 채널A
 
뭐니뭐니해도 최악의 실수는 딸아이에게 <티처스>에 대해 말했다는 것이다. 늘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이기에 나는 아이가 내 말을 들어줄 거라 착각했다. 

"C야. <티처스>라는 프로가 있는데 이런이런 내용이거든? 정말 엄마가 공부하라는 뜻이 아니고, 도움 되는 게 많이 나오더라고. 한번 봐봐. 그냥 프로그램 자체가 재밌어" 
"그래요? 유튜브에서 보긴 했는데. 몇 화가 재밌어요? 엄마가 추천해주세요." 

처음에는 호감이 있던 아이는, 내 말 속에 숨어 있는 뜻(공부해라. 정신 차려라)을 알아차린 것일까. 한 회를 다 보지도 않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더 이상 보지 않겠단다. 

'네가 안 보겠다면, 내가 얘기해주면 되지, 뭐!'라는 쓸 데 없는 투지에 불탄 나는 틈만 나면 '이번에 티처스에 나온 애는...'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시전했고, 결국 아이에게서 최후의 통첩이 떨어졌다. 

"엄마. 이제 앞으로 <티처스> 얘기 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거니까요."

아. 아이가 안 보겠다고 했을 때, 그때 멈췄어야 하는데. 엄마들은 입을 닫아야 할 때는 늘 한 박자 늦게 알아버린다.

엄마 체력을 올려준 <티처스>

열정은 끓어오르는데 얘기할 데도 없고, <티처스> 덕분에 알게 된 (얕은) 지식들도 많은데 이걸 어쩌지... 중학교에 올라가는 둘째 영어 단어 공부를 시켜? 아니면 이제 4학년이 되는 막둥이를? 오늘도 핸드폰 게임 아니면 포켓몬 카드 놀이에 열중하는 두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그냥 고개를 저어버린다. 

<티처스> 덕분에 얻은 성과도 분명히 있지만 <티처스> 때문에 잃은 것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눈빛이었다.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 싶다가도 베개 싸움을 하는 순수한 아이들이고, 영어 공부는 안 해도 소설책을 읽으며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는 아이다. 예쁜 구석이 많은 이 아이들을 자꾸 세상의 잣대로만 보려 했다. 

유튜브에서 <티처스> 몇 번 검색했다고, 이제는 온갖 관련 동영상들을 추천해준다. 개떡 같은 소신마저도 지키며 살아가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티처스> 덕분에 한번 '씨게(세게)' 흔들렸다.

나는 아직 우리 아이들을 믿기로 했다. 아이들은 지금 아이들의 속도대로 잘 자라고 있을 거라고.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는 엄마가 되겠다고. 

그나저나 이제 러닝머신할 때 뭘 봐야 하나? 한 시간짜리 재밌는 영상이 뭐가 있지? <티처스>가 아이들 성적은 책임져주지 못했지만, 내 체력 하나 챙겨준 것만큼은 확실하다. 기록이 그 증거다. 
 
▲ 런닝머신의 기록 티처스 덕분에 '작심삼일'을 개고 런닝머신 1시간 기록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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