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1 아들이 생애 첫 임금노동을 시작했다
[김웅헌 기자]
2024년 2월. 군산에 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아들이 생각보다 빠른 생애 첫 임금노동을 시작했다. 최저임금 시급 9,860원. 학교 밖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마주한 첫째 아들의 현실이다.
부모로서 자의든 타의든 임금노동 시장으로 아이를 보내는 것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아이의 인생이며, 나름대로 목표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말릴 수도 없고. 하지만 한편으론 변변하게 비싼 과외도 시키지 못하고, 넉넉하게 다른 부모들처럼 자식이 하고 싶다는 걸 마음껏 하라고 지원할 형편도 못 되는 부모의 입장이 미안하기도 했다.
▲ 생애 첫 알바 유니폼과 아들의 어릴 적 사진 |
ⓒ 김웅헌 |
주말부부 7년 차. 아버지로서 자식들의 교육에 깊게 개입하지 못한 지 꽤 오래됐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직장 때문에 오랜 이별의 탓일까. 가끔 끼어드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어설픈 개입이 일관성도 없을까 봐, 엄마·아빠의 입장도 다를 때가 있어서 아이들에게 혼란만 끼칠까 봐 두려울 때가 많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다.
열일곱 아들. 방학 동안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아르바이트에 돌입했다. 시급 9860원. 아니 3개월 수습 기간은 8874원. 아들 녀석은 당당하게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하루 4시간.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 달 동안 40만 원을 벌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아들의 음악공유프랫폼 음악에 빠진 아들의 자작곡 이미지 |
ⓒ 김웅헌 |
아들의 아르바이트 목표는 앞으로 300만 원을 직접 벌어서 수준 높은(?) 음악을 하기 위해 장비와 악기를 구입하는 것. 그것이 처음으로 청소년 임금노동에 나서는 이유였다.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로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용기(?)가 가상했지만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지난 주말 오래간만에 들른 집, 돈 벌러 나간 아내를 돕겠다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데, 아이가 아르바이트 하며 입었던 프렌차이츠 뷔페 유니폼 2벌을 발견했다. 유니폼에 묻은 각종 음식물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밤새 악기와 놀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일어난 아들에게 한 마디 건넸다.
"아들, 아르바이트 할 만하냐. 처음 하는 일이라 힘들지 않니?"
"괜찮아요. 식탁 닦을 때 사장 몰래 앉기도 해요. 힘들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한 달만 일하고 다른 아르바이트 알아보려고요."
이유를 묻자, 친구들도 떠나고 일하는 것에 비해 돈이 적다는 이유에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는 "아르바이트 안 해도 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 너 알아서 해라"는 짤막한 말만 남겼다.
아들에게 속으로만 전한 말
남도의 변방 머나먼 섬 거문도에서 태어난 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나다. 살면서 세상의 중심에 한 번 들어가지도 못했던 아빠다. 늘 아웃사이더로 살았다.
▲ 생애 첫 근로계약서 열일곱 첫 알바생의 근로계약서 |
ⓒ 김웅헌 |
하지만 책상 위에 놓인 아들이 쓴 표준근로계약서를 바라보면서는 마음이 짠했다. 아버지도 임금노동자. 너도 청소년 임금노동자. 자식에게 물려줄 게 없어서 미안했다. 근로계약서에 다치면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인 산재보험 적용이 표시되지 못하는 현실 앞에.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아점을 먹기 위해서 부시시한 모습으로 주방을 배회하는 아들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아들, 그래도 너의 생애 첫 임금노동 도전을 축하한다. 앞으로 아버지와 같은 임금노동자의 길을 가더라도. 너의 노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권리가 무엇인지, 노동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온몸으로 찾으며 살아라. 아빠가 너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으니까.'
내일의 출근을 위해 상경하는 길. 아들에게 한 마디를 했다. "참 오랜만에 한번 안아보자" 데면데면 말없이 부자간의 포옹이었다. 나중에 전화 통화했던 아내의 말에 따르면 아들 녀석이 "공부가 제일 쉬운 거"라고 했다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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