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마음과 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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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꽃밭이 그려진 편지지 두 장을 올려놓고 책상 앞에 앉았던 12월의 밤이었다.
스승님께 지난 2년간의 소회와 감사를 담아 편지를 쓰려 했는데 생각과 말이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고 술래잡기하듯 꽁무니를 뺐다.
드문드문 경조사 봉투나 전시 방명록, 감사편지를 쓸 때 상황에 따라 바른 글씨로 또박또박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지만, 평상시 의사소통에 문제가 될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넘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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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란 꽃밭이 그려진 편지지 두 장을 올려놓고 책상 앞에 앉았던 12월의 밤이었다. 스승님께 지난 2년간의 소회와 감사를 담아 편지를 쓰려 했는데 생각과 말이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고 술래잡기하듯 꽁무니를 뺐다. 맴도는 말들이 자꾸 뒤엉켜서 종이를 꺼내 생각나는 대로 끄적거렸다. 초고 형태의 편지를 20여 분간 공들여 다듬고 편지지에 옮겼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엉성한 필체 때문이었다. 평소보다 큰 글씨로 적어서인지 못난 필체가 더 두드러져 보였다. 정갈하게 담아내고 싶은 마음과 달리 필체는 멋대로 날뛰는 망아지 같았다. ‘아… 좀 더 가독성이 있다면 좋을 텐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았다.
요즘 시대는 글을 쓰지 않고 누른다고 말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펜과 종이를 대체했고 손글씨를 쓸 일이 나날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A4용지 반쪽 이상의 긴 글을 썼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짤막한 메모와 낙서, 자필 서류를 작성할 때 고작 1분 남짓 펜을 들었고 이마저도 대충 쓰다 보니 글씨를 흘려 쓰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드문드문 경조사 봉투나 전시 방명록, 감사편지를 쓸 때 상황에 따라 바른 글씨로 또박또박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지만, 평상시 의사소통에 문제가 될 만큼 불편한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저냥 넘어가 버렸다.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도 아쉬움이 남았던 것을 계기로 이참에 엉망진창이 된 필체를 교정해보자며 필사 노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다섯 줄을 넘겨 쓰다 보면 어느 틈에 익숙한 습관대로 자음과 모음을 잇고 있었고 노트 한 면을 균형 있게 쓰기가 어려웠다.
고치기 어려운 습관으로 꼽히는 게 몸에 밴 것, 필체라고 한다. 하지만 습관은 노력의 꾸준한 반복이라는 말을 더 믿어보려 한다. 올봄부터 작업실 인근 문화원에서 캘리그래피 강좌를 수강하기로 했다. 5월 스승의 날 편지에는 전보다 훨씬 정갈하게 마음을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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