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의 촌철生인] 내가 알아서 살게요

2024. 2. 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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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가는 일직선 삶보다나답게 사는 지그재그 삶이더 재미있고 아름답지 않나'지그재그(zigzag)'라는 단어가 한자 '갈지(之)자'와 유사하게 생긴 건 흥미롭다.

"골프든 탁구든 제가 알아서 살게요." 인도나 부탄, 몽골이나 미얀마 같은 나라만 여행하지 말고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도 가보라고 조언하는 이들에게도 "제가 알아서 살게요." 내 맘대로 나답게 사는 지그재그의 삶이 다 같이 나란히 곧게 뻗은 일직선의 삶보다 재미있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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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가는 일직선 삶보다
나답게 사는 지그재그 삶이
더 재미있고 아름답지 않나

‘지그재그(zigzag)’라는 단어가 한자 ‘갈지(之)자’와 유사하게 생긴 건 흥미롭다. 단어의 의미가 같고 형태가 유사할 뿐만 아니라 ‘z’와 ‘지’가 음성적으로도 거의 동일하다니. 많은 나라에서 엄마를 부르는 단어에 입술소리 ‘므’가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직선이 아니라 좌우로 어긋나는 패턴을 보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지’ 소리를 떠올렸던 것일까?

사실 지그재그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에서 유래한 독일어 ‘지크자크(zickzack)’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즉 의성어 유래이다. 지그재그와 마찬가지로 19세기 인류의 발명품 ‘지퍼’ 역시 지퍼를 열고 닫을 때 나는 소리에서 착상해 붙인 이름이다. 톱니와 지퍼처럼 서로 어긋난 것들이 마주칠 때 나는 소리가 파찰음 ‘지’로 들리는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당연한 원리일까?

요즘 Z세대는 지그재그 자체라 할 만하다. 서로 마주 보고 가지런하거나 한 자리에 둥글게 모아 나는 잎들이 아니라 어긋나는 잎차례처럼 한 사람 한 사람 다 다르다. 이들을 주요 타깃으로 하는 패션 쇼핑 플랫폼 중 하나인 ‘지그재그’는 3년 전 매우 인상적인 광고를 집행했다. 70대의 윤여정 배우를 모델로 섭외한 것. 타깃과의 나이 차이가 무려 50년 가까이 나는 모델로 신선한 타격감을 준 것이 성공 요인이었던 게 아니라 그가 다름 아닌 윤여정 배우였기에 성공적이었다.

브랜드 네이밍 자체가 독창적이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모델과 브랜드를 멋지게 연결함으로써 브랜드를 차별화하고 자신의 고유한 브랜드 가치를 단박에 보여주었다. “옷 많이 산다고 뭐라 그러는 애들 있더라. 참나 웃겨, 정말. 됐어, 얘. 남 눈치 보지 말고 맘껏 사.” 여기서 끝났다면 윤여정 배우 특유의 말투를 활용해 소비를 종용하는 재미있는 카피 정도로 남았겠지만 카피는 이렇게 이어졌다. “마음이 왔다 갔다 사는 거지 뭐. 니들 맘대로 사세요.”

‘구매하다’와 ‘살다’의 동음이의어 ‘사다’를 핵심 카피로 쓴 쇼핑 플랫폼 광고는 이전에도 있었다. 톱모델이 등장해 ‘전 잘 삽니다.’ ‘제가 잘 사는 이유’와 같은 카피로 브랜드의 이점을 이야기했던 꼭 10년 전 광고. 그때는 ‘잘 사는(Buying) 것이 곧 잘 사는(Living)’ 시대였다면 지금의 Z세대는 마음이 왔다 갔다 맘대로 사는 것이 ‘나다운’ 세대다. 그들의 마음이 어디로 왔다 갔다 하는지를 알기 위해 모든 브랜드는 노심초사하고 심사숙고한다. 그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는 대신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하도록 놀이터를 만들어준 덕분에 이 영리한 브랜드는 계속 성장했다.

지난해 지그재그는 3년 전의 광고를 이어받아 또 한 번 새로운 캠페인을 펼쳤다. 이번 모델은 젊다. 여행 유튜버인 원지, 한국계 호주인 유튜버인 해쭈, 모델 배유진, 배우 신예은, 그룹 아이브 리즈가 차례로 등장하는 광고에서 이들은 각자의 삶을 보여준다. 그 삶에는 남들의 수군거림, 간섭, 편견 그리고 무례한 말들도 있다. 저 몸매가 다이어트한 몸매냐고, 저 옷이 어울리냐고. 또는 너무 말랐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놀면서 돈 버니 팔자 좋다고. 아마도 이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실제로 들은 말일 것이다. 이런 수군거림을 소음으로 까맣게 지워버리며 이들은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알아서 살게요.”

아, 나도 뭔가 좀 시원하다. 내 라이프 스타일과 취향에 간섭하는 이들에게 나도 유쾌하게 한 방 먹인 느낌이다. 골프나 스포츠에는 1도 취미 없는 나를 향해 매번 이제 당신도 골프 칠 때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중년의 지인들에게 나도 말해야겠다. “골프든 탁구든 제가 알아서 살게요.” 인도나 부탄, 몽골이나 미얀마 같은 나라만 여행하지 말고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도 가보라고 조언하는 이들에게도 “제가 알아서 살게요.” 내 맘대로 나답게 사는 지그재그의 삶이 다 같이 나란히 곧게 뻗은 일직선의 삶보다 재미있고 아름답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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