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나라 수축하는데, 무능한 여당과 마피아 야당이 공생"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야당에 축복이던 탈냉전 시대 막내려
햇볕정책,정신 살리되 창발적 적용을
정책의 불가피성, 여야 서로 인정할 때
난제 1호는 인구소멸..초당적 노력해야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조응천 미래대연합(가칭)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및 김동연 경기지사에 이은 6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입니다. 신당 창당 직전인 지난달 18일과 창당 직후인 5일(전화) 두차례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이 공동대표는 "'수축 사회'가 된 대한민국이 무능한 여당과 마피아식 가족주의가 판치는 민주당의 공생으로 누란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이어 "민심의 욕구를 신당이 의석으로 흡수 못 하면 총선 후 폭발적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며"국민의당·자민련과 달리 신당은 수도권·청년에서 바람이 불어 호남·장년층으로 확산 중인 차별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민주당의 문제점과 양당 기득권 정치의 해악 및 신당의 전략 ▶'수축사회'가 된 나라 현실 진단과 '이낙연 표' 개혁 방안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강찬호 논설위원
(박성민) 탈냉전기였던 지난 30년간 민주당은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약진했다. '중국 특수'로 경제가 활황이었고 '평화가 경제'라며 북한에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 패권 전쟁이 불붙은 가운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중국과 북한이 대만과 한국을 위협하는 신냉전기에 돌입했다. 복지·평화 등 민주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노선이 계속 유효할까.
A : (이낙연) 나와 생각이 완전히 일치한다. 탈냉전은 민주당에 분명히 축복이었다. 대한민국을 억제해온 냉전의 굴레를 벗겨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하고 부응한 게 노태우 정부였다. 냉전 때문에 수교하지 못했던 32개국과 수교했다. 또 탈냉전 기간 국민소득이 3배로 뛴다. 1994년 1만 달러, 2006년 2만 달러, 2017년 3만 달러를 달성했다. 탈냉전 특수를 만끽한 거다. 이는 우리가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중국과 무역을 할 수 있던 시대여서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지 못하는 시대다. 우리가 중국과 경제관계를 지속하려면 미국의 간섭에 시달려야 하는 시대다. 이에 따라 이념과 가치가 정치에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탈냉전 시대에 누렸던 것들을 내려놔야 하는 시대가 된 거다. 탈냉전 시기에 북한은 핵무장으로 질주하는데, 그 속도와 우리 경제 성장의 속도가 놀랍게도 일치한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큰 아쉬움을 남긴 지점이 여기다. 북한이 미국·일본과 수교를 원했지만, 우리 정부는 견제했다. 그 결과 북한은 핵무장으로 치달은 것이다. 천추의 한이 되는 일을 한 거다. 노태우 정부 당시 난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이었다. 지금은 작고한 자민당 의원이 나를 만나 '당신 정부의 혼네(진심)가 뭐냐? 일본의 북한 수교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방해하냐'고 묻더라. 나는 '그 사람들(한국 정부)은 일본이 북한과 수교하길 원치 않는 게 진심일 것이다. 그건 잘못된 거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국제 질서가 신냉전 시대로 변했는데 거대 여야는 변화를 거부하고, 찍어 누르기만 한다는 게 비극이다. 유럽을 보면 정당들이 사회 변화에 따라 생로병사를 거듭한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신당을 만들어 바로 집권하지 않았나? 그런 유연성과 적응력이 우리 정당엔 없다. 연정 경험부터 DJP(김대중·김종필) 연립정부밖에 없다. 그나마 김대중·김종필이니까 가능했다. 이후 정치 지도자들은 역량과 상상력 부족으로 폐쇄적인 정치를 하다 보니 국가 전체가 왜소해졌다. 총선에서 다당제의 초석을 마련해야 지속 가능한 나라가 실현될 것이다.
(박) 대선 이후 외국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졌는데?
A : (이) 2022년 5.10 대선 이후 미국과 독일에서 1년 넘게 머물다 돌아왔다. 유럽에 극우정당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탈리아에선 극우가 집권했다. 그러나 독일은 좌우 연정도 서슴지 않는 등 극단 세력을 변방화하는 지혜가 있어 일본을 제치고 세계 3위 국가로 올라섰다. 일본은 초비상이지만, 극복할 길은 없을 것이다. 자민당이라는 오래된 옷을 벗을 수 없어서다. 독일에서 기민·기사 연합 외교 위원장과 1시간 넘게 대화한 적이 있다. 독일이 어려운 지경에 놓인 원인이 뭐냐고 물었다. '통일 비용이 많이 들어 산업 투자가 소홀해졌다. 그래도 통일은 불가피했고 잘한 일이었다. 또 값싼 소비재와 에너지 제공이 정부의 책임이다 보니 중국과 러시아를 키워줬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었든지 불가피하고 옳은 선택이었다. 지금 독일은 후과를 감당하고 있을 뿐'이라 하더라. 남(상대당) 탓을 하는 말이 없는 데 감동했다. 한국 정치인 가운데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가지 또 놀라운 일이 있었다. (박) 그 두 가지가 뭔가
A : 그 외교 위원장이 나와의 면담 사실을 SNS에 올리자마자 다른 독일 의원들이 내게 면담하자고 연락해온 일이다. 극동 먼 나라의 전직 총리까지 만나려는 열정, 한국 정치인이면 이럴 수 있을까 하며 놀랐다. 또 하나는 2008년 18대 국회 당시 여야 공동으로 헌법연구회를 만들었을 때 일이다. 회원들이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이탈리아· 영국 등 5개국을 찾아 그들의 헌법을 공부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주한 독일대사가 헌법연구회 소속 의원들을 초청해 세일즈맨이 상품을 홍보하듯 독일 헌법의 장점을 2시간 넘게 설명하더라. 더 감동적인 것은 3박 4일 방독 일정을 대사관 측이 미리 준비했다는 것이다. 독일 대사가 '당파와 관계없이 면담이 필요한 정치인들과의 미팅 일정을 다 짜놨고, 통역까지 준비했다'고 하더라. 독일이 유럽에서 난민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면서도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는 힘이 이렇게 정치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박) 북한이 사실상 핵국가가 됐는데, 햇볕정책은 여전히 유효한가
A : (이) 북한을 지원해 긴장을 완화한다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북한이 핵을 갖기 전의 얘기였다. 지금은 북한의 핵 보유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시대다. 즉 햇볕 정책의 정신은 지금도 일관되게 흐르지만, 구체적인 적용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내가 여전히 주목하는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미국 대북조정관을 지낸 페리의 보고서다. 그 핵심은 두 가지다. 상호 위협 감축,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상대하라'는 것이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 정신으로 북한에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탈냉전 시대의 가치를 신냉전 시대에 적용하는 과제가 대한민국에 있고, 민주당에도 있는데 다른 곳에 정신이 매몰돼 있다. (박)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도 핵무장해야한다"는 담론이 나왔다가 지금은 소강상태인데
A : (이) 윤 대통령까지 핵무장론을 옹호하다가 돌연 꼬리를 감췄다. 미국한테 의심만 받았지, 얻은 게 하나도 없다. 미국에 있을 때 워싱턴의 외교관 몇 사람이 내게 '한국은 핵 문제를 포함한 안보 방안을 물밑에서 협의하면서 로드맵을 세워야 미국이 의심하지 않고, 차선의 대책이라도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는 덜렁 말부터 던지고 싸움하다가 본론은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박) 우리도 이제는 호주처럼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제공받거나 일본 정도 핵 재처리 능력을 인정받아야 할 때 아닌가
A : (이) 그렇다. 이는 현 정부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미·일 핵 협정과 한·미 핵 협정은 수준이 다르다. 최소한 일본이 미국의 인정을 받은 수준까지 우리도 재량권을 요구해 받아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 미사일에서 재량권을 넓힌 것처럼 이 문제도 해내야 한다. (박) 총리를 지낸 경험과 해외에서의 성찰을 종합해볼 때 대한민국의 여러 난제 중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뭔가
A : (이) 꼭 해결해야 할 난제는 '인구 소멸' 이다. 이걸 해소 못 하면 나라가 지속될 수 없다. 한가지 사업만으로는 흔적도 안 나오니 여러 사업을 끈기있게 해야 한다. 국내에서 성공 사례는 둘 뿐이다. 우선 해남·영광군이다. 출산 가정엔 상상 가능한 지원을 다 해줬다. 일시적이지만 출산율이 3.5명을 찍었다. 또 하나가 출산율이 1.6명에 달한 세종시다. 정부 지원 덕분이 아니다. 교원·공무원이 대부분이라 출산·육아가 경력 단절 요인이 되지 않는 세종시 여성들의 직업적 안정성 덕분이다. 이를 민간까지 확산하는 게 과제인데, 만만찮다. 또 지역별로 출산율의 차이가 있는 점도 들여다봐야 한다. 서울이 출산율 최저다. 삶의 경쟁이 심하고 주택난이 심하기 때문이다. 또 젊은 부부들이 시부모나 친정 부모와 먼 거리에 사는 점도 이유다.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다. 농촌의 출산율이 서울보다 높은 것은 시부모나 친정 부모가 젊은 부부들과 가까이 살아 육아에 유리하기 때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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