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노딜’ 국회
지난 1일 여야는 모처럼 ‘법안 대타협’에 근접했다. 국민의힘이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더 미루는 조건으로,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영세사업장의 혼란을 해소하고 산업안전 컨트롤타워를 설립할 기회였다.
몇 가지 긍정적인 신호도 있었다. 평소 국회에 협상 공간을 내주지 않던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수용 가능 의사를 내비쳤고, 산안청을 정부조직법에 확실히 못 박기로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미 “2년 유예 뒤엔 전면 실시에 협조하겠다”고 수차례 공언했다. 만약 이날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면 새로운 협치의 국면이 열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날은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민주당 강경파가 발목을 잡았다. “노동자의 생명·안전이 더 우선”이라는 원론적 이유를 꺼내자, 의원총회에서 9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수용 거부’ 당론이 관철됐다. 김성주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의총장을 나와 피케팅 중인 노동계 인사들에게 활짝 웃으며 손으로 엑스(×)자를 그려 보였다. 내심 자신들의 결정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노딜’(no deal)은 노동자 생명·안전을 지킬까. 사업주의 처벌 공포심은 커졌으나, 재해 감소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통계가 그렇다. 2022년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사망자 수는 248명→247명으로 1명 줄었다. 반면 법 적용 대상도 아닌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자는 435명→376명으로 59명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2022년 산재 감소의 이유를 중대재해법이 아닌 경기침체에서 찾았다.
법 집행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83만7000여개 사업장이 새로 중대재해법 적용대상이 됐으나, 수사 담당 감독관은 100명→133명→148명으로 찔끔 늘었을 뿐이다. 현장에선 “3개월 만에 업무가 마비될 것”이란 소리가 들린다. 예방 업무를 맡은 고용부 산업안전감독관 역시 800명에 불과하다. “조사 권한이 없는 산안청 설치는 무의미하다”는 민주당 강경파 주장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위성정당 선거법 방치까지 여야 간 반복되는 ‘노딜’을 바라보면서 내심 이런 의심도 든다. 어쩌면 정치인 입장에선 ‘노딜’이 가장 편한 게 아닐까. 합의만 하지 않으면 지지층으로부터 “왜 저들과 타협하냐”는 비난에 시달릴 일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상대 당에 돌리면 된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건 일하는 국회가 아닌 ‘딜하는 국회’일 수도 있겠다.
오현석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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