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바둑 용병의 존재감
올해 KB 바둑리그가 창설 21년 만에 처음 외국인 기사 제도를 도입했다. 중국의 구쯔하오, 당이페이, 양카이원, 랴오위안허 등 4명에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대만의 쉬하오훙까지 유명 외국 선수 5명이 올해 바둑리그에서 활동한다.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은 “얼마나 받을까”였다. 야구의 오타니와 이정후, 축구의 손흥민 등 세계적 스타들의 천문학적 연봉 얘기에 중독된 탓인지 나도 그게 궁금했다. 구쯔하오는 중국 최고의 기사다. 지난해 난카배 결승에서 세계최강 신진서를 꺾을 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둑리그 참여를 발표할 때 그는 중국랭킹 1위였고, 지금은 2위다. 그는 어떤 연유로 한국에 오게 되었을까.
구쯔하오의 소속팀 ‘원익’의 감독 이희성 9단은 “구쯔하오가 중국리그 ‘선전 섭도장’ 소속인데 그곳 감독인 리캉 6단을 통해 선이 닿았다. 구쯔하오가 참여 의사를 밝혀 순조롭게 일이 진행됐다”고 알려준다. 박정환의 ‘원익’은 구쯔하오가 합류하며 최강팀이 됐다.
바둑계는 좁다. 한국팀 감독들은 대개 중국 선수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고 그런 연줄을 통해 선수를 스카우트했다. KB 바둑리그는 팀 성적에 따른 상금 외에 매 라운드 대국료가 지급되는데 이긴 팀 1400만원, 진 팀 700만원이다. 선수들은 이걸 나눠 갖는다. 신진서라고 해서 특별대우는 없다.
그러나 외국 선수를 데려오려면 항공료 등 여비에다 뭔가 더 줘야 한다. 이번 5인의 용병은 각자 얼마인지 공개된 것은 없다. 사실 ‘돈’은 중요하지만 1차 문제는 아니다. 친분이 중요하다. 또 한국바둑을 접하고 특히 신진서 같은 강자와 대국할 수 있다는 것도 서울행의 명분이 된다. 아직은 그런 정도다.
중국리그는 23년 전부터 한국 기사를 받았다. 유창혁·목진석이 시작이다. 몇 년 뒤 이세돌은 최고 대우를 받았는데 스스로 내건 ‘1000 대 0’ 의 계약조건이 화제였다. 이세돌은 한국리그가 태동할 때 ‘실력에 따른 차등대우’를 요구했다가 6개월 휴직하는 등 된서리를 맞았다. 그런 이세돌이기에 중국에 가서는 ‘이기면 1000만원, 지면 한 푼도 받지 않는다’는 화끈한 계약을 맺었다. 이런 방식을 다른 선수들도 많이 따라 했다. 지금 신진서는 이세돌의 두 배를 받는다.
바둑은 ‘개인전’이 기본이다. 축구나 야구와 달리 선수들은 팀에 전적으로 소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연봉 개념이 존재할 수 없다. 용병 계약도 가지각색이다.
여자 리그는 처음부터 외국 용병을 받았다. 중국의 위즈잉, 루이나이웨이, 일본의 후지사와 리나 등이 한국을 밟았다. 올해는 중국의 우이밍, 일본의 스미레 같은 천재 소녀들이 일찌감치 예약을 해둔 상태다.
시니어 리그의 연장인 레전드 리그가 히트를 쳤다. 요다 노리모토와 나카네 나오유키 두 일본 기사가 용병으로 참여했는데 진짜 레전드급인 요다는 플레이오프에서 99% 이긴 바둑을 역전당했고, 팀도 탈락했다. 반면 무명의 나카네는 처제(김효정 3단)의 소개로 ‘yes문경’ 팀에 합류했다가 용병 최초로 MVP가 되는 기적을 일군다. 그의 활약으로 팀은 정규리그 1위에 통합우승까지 차지한다. 나카네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KB 바둑리그가 용병을 받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면 퇴보 외엔 길이 없다. 바둑계는 의외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이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한국은 중간, 일본은 쇄국주의에 가깝다. 사실 일본이 강할 때는 다들 일본에 유학했고, 프로생활도 가능했다. 하나 지금 일본이 외국 기사를 받아들인다면 모든 기전에서 일본인 우승자는 씨가 마를 것이고 그 후 일본 바둑의 흥망은 점칠 수 없다. 결국 승부 세계도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걸까.
현재 KB 바둑리그의 용병 5인의 성적은 4승 4패. 아직은 예상보다 좋지 않은 성적이지만 분명 많은 재미를 안겨줄 것 같다.
박치문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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