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점수로 보면 “SKY 자연계 68%, 의대 가능”
대입도 흔드는 ‘의대 블랙홀’
서울대 공과대학 한 교수는 6일 정부의 발표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하면서 대학 입시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이날 발표된 의대 증원 규모는 지난해 서울대 자연계(의·약학 제외) 입학생을 합친 것(1775명)보다 많다. 의대로 가는 문이 1.5배 이상 넓어진 셈이다. 입시업계에선 당장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N수생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입시 결과를 분석한 결과, 서울·연세·고려대의 자연계 일반학과 91개 중 의대 지원이 가능한 점수대 학과는 26개(28.6%)였다. 정부 발표대로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의대 지원 가능 학과는 62개(68.1%)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 점수가 부족해 의예과 대신 자연계 일반학과에 진학한 학생 중 상당수가 올해 똑같은 수능 점수를 받더라도 의대 진학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서울 내 주요 10개 대학의 학생들이 등록만 해놓고 반수에 도전하는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다. 캠퍼스에서 수능특강 문제집을 펴는 학생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종로학원은 정원 확대로 인해 의대 정시 합격선이 국어·수학·탐구영역 백분위 점수(300점 만점) 기준 285.9점에서 281.4점으로 평균 4.5점 하락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의대 합격선이 낮아지면서 도미노 현상으로 다른 최상위권 학과까지 합격선이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메디컬 계열에서도 연쇄 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의대생 178명이 자퇴 등 이유로 중도 탈락했다. 이 중 77%(138명)가 지방권 대학의 의대생이었다. 특히 인천·충북 등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의 중도 포기율이 더 높았다. 수도권에 인접할수록 ‘수도권 의대’로 오려는 유인이 강하기 때문이다.
호남권의 한 의대 학장은 “지방 의대에서는 반수하려는 학생도 많을 것”이라며 “우리 학교도 서울에서 온 친구들이 3분의 1 정도 되는데 다 휴학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입시업체 유웨이의 이만기 부사장은 “의대와 입학 성적이 비슷한 치의대·한의대·약대·수의대 등에서도 이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방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이 충원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이를 노리고 지방에 내려가는 학생들이 생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역인재전형은 의대가 소재한 지역의 인근 고교 출신만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다. 2028학년도부터는 출신 중학교까지 제한 조건이 확대된다. 임성호 대표는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지역에 내려가는 초등학생도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대학들로부터 3월 중순까지 증원 배분 수요를 받고, 복지부와 별도 기구를 꾸려 심사를 거친 뒤 대학별 배분 규모를 최종 결정할 전망이다.
의외로 의대 입시 열풍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만기 부사장은 “향후 수년간 의대 열풍 내지 광풍이 불겠지만, 점차 수그러들 것”이라며 “의사 공급이 확대되면서 급여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가람·이후연·채혜선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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