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통화부터 "강제북송 우려"…조태열, 中왕이와 '유선 상견례'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6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과 통화했다. 지난달 12일 조 장관이 취임한 뒤 25일 만에야 처음으로 ‘유선 상견례’가 성사된 것이다. 양 측은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데 공감했는데, 조 장관은 중국 내 탈북민 강제북송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등 첫 통화부터 민감한 현안도 제기했다.
외교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9시쯤부터 약 50분 간 이뤄진 통화에서 조 장관과 왕 위원은 한·중관계를 중시하고,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공감대를 재확인했다. 또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 다양한 수준에서 전략적 교류와 소통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 했다. 이에 따라 양 측은 한·중 간 외교안보대화, 외교차관 전략대화, 1.5트랙 대화 등 다양한 협의체가 조기에 개최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의하기로 했다.
조 장관은 “한·중 양국이 갈등 요소를 최소화하고 협력의 성과를 쌓아나가며,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조 장관과 왕 위원은 “변화하는 통상 환경 속에서 양국 간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 등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양국 간 무역투자를 심화해 새로운 발전 동력을 찾아 나가자”고 공감했다.
장관이 된 뒤로는 첫 통화지만, 조 장관과 왕 위원은 사실 구면이다. 조 장관이 외교부 2차관으로 재임 당시 이뤄진 양국 간 고위급 협의 과정에서 두 사람은 이미 만난 적 있다. 당시에는 ‘조 차관’이 ‘왕 부장’을 예방하는 형식이었지만, 이제는 카운터파트가 됐다.
이날 통화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왕 위원은 조 장관의 방중을 초청했고, 조 장관은 이에 사의를 표하는 한편 향후 외교 채널을 통해 방중 관련 협의를 계속하자고 답했다.
하지만 주목되는 것은 통화가 이뤄진 시점이다. 조 장관의 전임인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22년 5월 12일 취임했고, 나흘 만인 5월 16일 중국 측과 통화했다. 하지만 조 장관은 왕 위원과 통화하기까지 한 달 가까이 걸렸다. 그 사이 동맹 및 핵심 우방인 미국, 일본, 호주는 물론 베트남의 외교장관과도 이미 통화를 완료했다.
왕 위원이 최근 숨가쁜 해외 방문 일정을 소화하느라 시간 조율이 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대면 회담도 아닌 유선 통화는 사실 의지만 있다면 이보다 빨리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중국 측이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는 한·중 관계 발전에 큰 기대감을 가졌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이런 식으로 실망감을 표시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실제 윤 정부는 출범 직후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정상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등을 외교 우선 순위에 두면서 대중 외교는 상대적으로 뒷순위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엔 중국이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도 사실상 ‘뒷배’를 자처하는 등 한국의 최대 안보 위협인 북핵 문제에서 건설적 역할을 등한시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왕 위원과의 첫 통화에서도 정부의 당당하고 원칙에 따른 대중 외교 기조를 드러냈다. 조 장관은 “북한이 연초부터 각종 도발을 지속하며 한반도와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금지하고 있는 핵·미사일 개발과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북한이 추가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의 길로 나오도록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강화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 장관은 또 탈북민 강제 북송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도 전달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탈북민들이 강제북송되지 않고 희망하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중국 정부의 각별한 협조를 요청했다”면서다.
중국은 자국 내 탈북민은 난민이 아닌 불법 월경 범법자라고 주장하며 북송의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조 장관의 문제 제기는 이런 중국의 입장을 사실상 반박하는 것으로, 이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까지 한 것은 탈북민도 헌법상 한국민이며, 강제북송은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반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취지로 읽힌다. 외교부는 이에 대한 왕 위원의 반응은 소개하지 않았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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