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채팅] 게이머 소비자 운동과 갑질 사이 불분명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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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소비자 갑질'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게임의 창의적·문화적 속성은 슬금슬금 약해질 수 있으며, 내가 돈을 더 썼으니 더 큰 요구를 해도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해질 수도 있고, '공동체적 가치'를 위한 소비자운동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취향과 이익을 위해 소비력을 활용하는 '소비자 갑질'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게이머 소비자운동은 분명 방만한 게임사에 자극을 주고 바람직한 게임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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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소비자 갑질’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택배 기사에게 음식 쓰레기 좀 버려달라는 진상 고객, 식당에서 뛰어다니다 다친 아이 치료비 물어내라는 부모 등 작은 사건 사고는 끝이 없다. 이런 뉴스를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지만, 사실 갑질과 정당한 항의 사이의 경계는 의외로 선명하지 않다. 둘 모두 소비자가 있어야 상품도 공장도 시장도 존재한다는 논리가 전제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불한 돈값을 해다오”라는 정서는 같다. 선을 넘어 사회적 비난을 받을 정도일 때 갑질이라 불리고, 선 안에서 체계적인 방법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면 소비자운동이 된다.
2020년 발매된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의 별점 테러를 받아 화제가 된 바 있다. 전편에 매료되었던 다수 게이머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던지, 플레이어 커뮤니티에서는 개발사인 너티 독이 “소비자를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게임도 자동차처럼 소비자운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물론 2016년의 ‘클로저스’ 성우 교체 사건을 남성 게이머들의 ‘화력’이 가시화된 첫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이 때만 해도 “게이머는 소비자다”라는 구호가 지배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2021년에는 K-팝 팬덤이 종종 활용하던 ‘트럭 시위’가 게임 씬에 등장했다. 트럭에 실린 LED 전광판에 메시지를 띄워 게임사 주위를 천천히 도는 시위방식은 곧 게임산업의 독특한 소비자운동으로 간주되었다. ‘페이트 그랜드 오더’로 시작해 ‘마비노기’나 ‘우마무스메’에 이르기까지, 게이머들은 돈을 모아 트럭이나 마차를 대여해서 항의했다. 운영진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고, 집단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가히 게임 소비자운동의 전성기가 시작된 듯했다. 그런데 게이머가 소비자로 호명되고 게임 플레이가 상품 소비로 되어버린 일련의 변화가 마냥 바람직하기만 한 것일까?
게이머들이 개발자들에게 밥 사주며 고마워하던 낭만적인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부분 유료화와 확률형 아이템으로 게이머를 소비자로 만든 업계의 책임이 훨씬 크다. 하지만 거기에 맞서 자신의 모든 요구를 ‘소비자 권리’로 정당화하는 일부 게이머의 억지도 건강하진 않다. 게임의 창의적·문화적 속성은 슬금슬금 약해질 수 있으며, 내가 돈을 더 썼으니 더 큰 요구를 해도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해질 수도 있고, ‘공동체적 가치’를 위한 소비자운동이 아니라 자기 개인의 취향과 이익을 위해 소비력을 활용하는 ‘소비자 갑질’로 변질될 가능성도 있다.
게이머 소비자운동은 분명 방만한 게임사에 자극을 주고 바람직한 게임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상품이자 문화예술인 게임에 공산품 논리만 적용하려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게임문화의 앞날은 우울해진다. 내가 기분 나쁘니 그림도 스토리도 바꾸라 요구하기 시작하는 순간, 소비자운동은 위험한 ‘소비자 지상주의’가 될 수 있다.
윤태진 연세대 교수 (게임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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