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제 무너지자 '멍멍개' 된 남편…"힘 세졌다"는 北여성들
가부장주의가 강한 북한에서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대주’ 중심 배급제 붕괴하며 여성이 생계 꾸려
통일부가 6일 공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여성이 장마당에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늘어나며 여성의 가정 내 지위가 크게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는 2013~2020년 사이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6351명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됐다.
관련 심층면접에 참여한 탈북민 4367명 중 27.4%는 시장 활동이 가정 내 여성 지위에 미친 영향에 관해 남편과 위상이 동등해졌거나 남편보다 높아졌다고 응답했다. 41%는 위상이 다소 높아졌다고 봤다.
과거에는 세대주인 남편을 기준으로 배급이 이뤄졌으나, 배급제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남편의 지위가 하락한 게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6~2020년 탈북민 응답자 중에서 72.2%가 “식량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고 답했다.
2019년 탈북한 한 탈북민은 “김일성 시대 때는 장사를 하지 않고 다 배급을 주고 노임을 줬다. 남편들이 배급을 타 오니까 그때는 남편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남편들 보고 ‘멍멍개’‘낮전등’이라고 한다”며 “(여성들이) 힘이 많이 세졌다”고 말했다. 낮전등은 낮에 켜진 전등처럼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같은 해 탈북한 또 다른 여성은 “여자가 나가서 벌어서 그걸로 가정을 유지하니까 남자들이 여자 말을 듣게 된다”며 “남편들은 권한이 없어지고 울며 겨자 먹기다. 할 수 없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당연히 여자들이 권한이 높고 소리가 높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보고서는 “가정 내 젠더 평등 정도가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공적 영역에서의 젠더화된 위계 문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북한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위치에 내몰려 있다”고 분석했다.
결혼 늦어지고 이혼 증가…이혼가정 편견은 여전
이처럼 여성이 가정 경제의 책임을 과도하게 지게 되면서 결혼을 늦게 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1년 이전에 탈북한 응답자 1005명 중에는 25세 이하에 결혼했다는 비율이 66.8%였으나 2012년 이후에는 25세 이하 비율이 51.3%로 줄었다. 30대 이후의 결혼도 점차 증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식의 변화로 이혼도 늘었다. 전체 남녀 응답자의 각각 15.2%와 28.7%가 이혼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여전히 이혼은 강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엘리트 집단은 이혼하면 건설현장으로 좌천되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당한다고 탈북민들은 증언했다. 부모가 이혼한 경우 자녀들이 진학 시 불이익을 받고 결혼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도 전했다.
통일부는 보고서에서 “북한에서 이혼이 사회문화적으로 여전히 부정적으로 인식될뿐더러 특히 여성의 이혼은 남성보다 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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