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ETF 승인 나자 거래소 가치 ‘뚝’
최근 블록체인업계에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1월 10일 미국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일이다. 승인 직전부터 비트코인 가격은 기대감에 오르기 시작하더니 승인 소식이 나자 1비트코인당 5만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급상승했다. 미국에 상장된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 주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70달러대였던 주가가 한 달 만인 12월 28일 186.36달러까지 찍었다. 그런데 정작 승인 소식 이후에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비트코인이 소폭 내리는 동안 거래소 주가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더니 2월 초 120~130달러대로 떨어졌다. 비트코인이 10% 안팎 하락폭을 보인 20일 사이 거래소 주가는 30% 가까이 급락했다. 게다가 코인베이스 관련해서는 미국 현지 증권사 리포트에서 ‘부정적’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거래소 주가 급락 왜?
초보 투자자 ETF로 쏠릴 듯
코인베이스 급락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비트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되면서 굳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살 이유나 필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대두된다.
ETF 승인이 나기 전인 12월에 이미 미국 투자은행 번스타인(Bernstein)은 보고서에서 “5년 내 전 세계 가상자산 공급량의 10%인 약 3000억달러(약 394조원)가 ETF로 관리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TF가 거래소 거래량 일부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상자산 투자를 고려하는 초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가상자산 거래를 위해 복잡한 은행 인증 절차를 거치기보다 ‘ETF로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뭐’라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최근에 발간된 JP모건 보고서 논리도 비슷하다. JP모건은 “초보 가상자산 투자자 입장에서 굳이 코인베이스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동인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동시에 코인베이스 목표주가를 80달러로, 투자 권유 입장은 ‘중립’에서 ‘비중 축소’로 떨어뜨렸다. 케네스 워딩턴 JP모건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 ETF가 나온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비트코인 ETF로의 초기 자금 유입이 과거 2004년 금 현물 ETF가 출시된 첫 주와 비교할 때 훨씬 적다”며 “오른다 해도 당초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에 팔아라’라는 투자자 심리도 한몫했다. ETF 승인은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불과 1년 전만 해도 주가가 70달러대였던 것이 2배 가까이 치솟자 이제 차익 실현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진단이 꽤 설득력 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가상자산 시장이 오랜 기간 겨울을 보냈다가 간만에 호재로 가상자산 가격은 물론 거래소 가격도 급등하다 보니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두나무·빗썸 나란히 내리막
이런 분위기는 한국 주요 거래소에서도 비슷하게 감지된다.
사실 국내 주요 거래소, 특히 은행 연계 거래소들은 비상장이라 주가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다만 비상장 주식 거래 플랫폼인 ‘증권플러스 비상장’에 들어가보면 대략 이들 거래소 주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코인베이스처럼 한국 거래소도 비트코인 등락폭에 비해 주가가 널뛰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국내 점유율 1위 두나무, 2위 빗썸코리아의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의 주가는 코인베이스와 마찬가지로 ETF 승인 전까지는 상승 흐름을 보이다 ‘뉴스’가 발표된 후부터는 급락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참고로 증권플러스 비상장에서 두나무 주가는 지난해 11월 초만 해도 7만원대 초반에 거래되다가 12월 한때 14만원으로 약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그랬던 것이 1월 10일 이후 내리막길을 걷더니 2월 초 9만~10만원대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고점 대비 4만원 정도 떨어졌으니 하락률은 25%대에 달한다. 빗썸코리아 역시 11월 8만원대인 주가가 12월 14만3000원까지 올랐지만 다시 떨어져 2월 초 기준 11만원대에서 횡보 중이다.
해외는 물론 국내 거래소도 비트코인 제도권 편입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뿐 아니다. 주식 시장처럼 가상자산 거래소 역시 소비자 보호 등 강력한 규제를 받으면서 거래량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싱가포르 소재 블록체인·스타트업 리서치 회사 ‘로드스타트’의 안태현 대표는 “그간 관리 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던 거래량을 늘리기 위한 시장 조성이나 불완전판매, 과도한 마케팅 행위에 대해 규제당국이 제재를 강화할 경우 거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시각이 거래소 가치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ETF 확대되면 거래소도 이득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일단 다양한 가상자산 거래가 아직은 어렵기 때문에 거래소의 존재 의미와 가치가 여전히 충분하다는 인식이다.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현실적으로 ETF로 거래할 수 있는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좀 더 범위를 넓힌다 해도 앞으로 ETF가 기대되는 이더리움 정도고 대부분의 비(非)증권형 토큰은 여전히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거래소에 대한 가치는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자산이 ETF로 나오면 ‘가상자산이 현실에서 인정받았다’는 논리로 인식, 알트코인은 더 활발하게 거래소에서 거래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의 경우 거래소의 사업 범위가 법인계정, 수탁 등으로 확대가 되면 호재로 작용, 거래소 가치는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논리다.
통상 ‘규제 강화 = 악재’로 인식된다. 하지만 가상자산에서만큼은 ETF 승인 후 각국의 가상자산 규제 강화가 거래소, 특히 각국의 규제 아래 운영되고 있는 거래소에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주기영 대표는 “규제가 정비되면 오히려 규제 아래 운영되는 거래소가 진입장벽으로 인식되면서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한국의 경우 은행 연계 원화 거래소 가치가 역외 거래소와 비교가 안 되게 높은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거래소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주 대표는 또 “기관 진출이 용이해지면서 비트코인을 매입, 처분하는 현물 정산을 거래소들이 담당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코인베이스는 블랙록 등 대형 ETF 발행사들의 커스터디와 브로커리지를 담당하게 되면서 막대한 매출을 일궈내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6호 (2024.02.07~2024.02.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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