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뚫고 떨어진 운석, 그리고 사군자… 파격의 뒤엉킴

손영옥 2024. 2. 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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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김홍석 개인전
유쾌한 설치미술과 유화 매난국죽
한 공간에 전혀 다른 두 장르 선봬
관람객이 6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김홍석 개인전에 전시된 매난국죽 유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천장을 뚫고 사무실 회의실로 운석이 떨어졌다. 도저히 일어날 거 같지 않은 이 황당한 사건을 시각화한 설치미술이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그런데 또 다른 전시 공간에는 유화로 그린 매난국죽 사군자가 있다. 한 작가의 전시라고 보기에는 두 장르의 간극이 크다. 그래서 작가에게 무슨 사연이 생긴 걸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1일 개막한 개인전 ‘실패를 목적으로 한 정상적 질서’가 그것이다. 주인공은 개념미술 작가 김홍석(60)이다.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는 10년 만이다. 그는 이 두 사례에서 보듯 기존의 개념미술 작업뿐 아니라 전통적인 장르인 회화로 가지를 뻗은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작품을 내놓았다.

지난 1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개념미술의 경우 작가가 개념(아이디어)을 그린 드로잉을 제시하면 공장에서 인부들이 작품 제작을 한다. K2 전시실 1층에서 만나는 작품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세상을 권력의 중심과 주변으로 나눌 때 작가는 주변부적인 것, 예컨대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 등에 관심을 가져왔다.

기존의 개념미술 작업인 '하이힐 한 켤레'로 슬리퍼에 시멘트 덩어리를 붙여 하이힐로 만들었다.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에 나온 분수 조형물도 주변적인 것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작업이다.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면 물을 뿜는 분수가 많다. 그 분수라는 게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서비스하는 ‘노동하는 물’ 같았다”고 했다. 물이 떨어지는 순간을 형상화해 은색을 입힌 것은 노동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읽힌다. 황금색을 입힌 불꽃 조각, 바위를 굴리는 손, 슬리퍼에 붙은 시멘트 등 풍자가 있는 조형물이 겉은 재미있지만 한 겹 더 들어가면 슬픔을 자아낸다. 시멘트 덩어리가 하이힐의 굽처럼 달린 슬리퍼를 ‘하이힐’이라고 제목을 붙여놓는 식이다.

K1 전시실에 들어서면 탄성을 지르게 된다. 바닥에 운석이 떨어져 반으로 쪼개져 있고, 천장에는 뻥 뚫린 구멍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누군가 앉았을 사무실의 빈 책상이 무심히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설치 작품은 그럼에도 스펙터클함의 정도에서 절도가 있다. “저는 직경 3m를 넘는 개념미술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개념미술을 하는 한 유명 중국 작가가 인부를 극한의 조건에서 작업시키는 걸 본 충격이 컸다고 에둘러 이유를 설명했다.

운석이 사무실에 떨어진 것을 가정한 신작 설치 작품. 국제갤러리 제공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정작 가장 놀라운 것은 K2 전시장 2층의 회화다. 작가는 “처음으로 작품을 내가 생산했다. 다른 (개념미술) 작업은 공장에 맡겼다. 드로잉만 제 것일 뿐…”이라고 했다. 도대체 그는 왜 붓을 들고 그림을, 그것도 전통 문인화 소재인 매난국죽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는 1980년대에 서울대 조소과에서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한국미술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서양미술도 콘스탄틴 브랑쿠시, 헨리 무어 등 근대 추상 조각에 대해서만 배웠기에 동시대에 진행되는 미술은 전혀 배우지 못했습니다.” 백남준이 1984년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했을 때 백남준에 대해 물어도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다. 그럴 즈음 미국의 설치미술가 앨런 캐프로의 그 유명한 ‘얼음으로 쌓아올린 구조물’(1967)을 보고 문화적 충격에 휩싸였다. 동시대미술에 대해 배우기 위해 그는 독일 유학을 감행했다.

김홍석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독일 교수로부터 “자네 작품에서는 미국 냄새가 난다. 세계적으로 나아가려면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현대미술을 하라”라는 조언을 들었다. 고민과 연구 끝에 “피자와 카레, 김치, 소주를 먹는 내 모습이야말로 한국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뒤엉킴이야말로 한국적인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98년 귀국 이후 개념미술 작업을 지속하던 그가 회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작가는 유화로 그린 사군자인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그린 이유에 대해 “한 번도 수묵화를 그려보지 못했다. 그래서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써서 서구의 기법 그대로, 서구의 모더니즘 정신 그대로 그렸다”고 했다. 어떤 작품은 제목을 ‘매난국죽’이라고 붙였지만 어떤 것은 ‘구성’이라고 붙였다. 구성이라는 제목은 추상화의 선구자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이 아무것도 유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서양의 모더니즘 회화에서는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 오직 새로운 형식이 있을 뿐이다. 그의 작업에서는 새로운 형식적 혁신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수묵화를 유화로 그리는 행위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자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엉킴’이라는 말로 덮어버리기에는 뭔가 부족한 변신이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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