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의대정원, 필수 지역의료로 갈지가 관건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카드를 제시한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고령화로 인한 의료 수요 증가 때문이다. 소득 증가로 인해 의료 수요도 덩달아 증가한다. 소아과 문이 열리길 기다리다 황급히 진료 받는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같은 용어가 일상화된 이유도 있다. 지역 의료 붕괴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만큼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가 없다. 2000년 고령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의료 수요 증가가 눈에 보였는데도 의사 인력에는 무관심했다. 오히려 반대로 갔다. 1998년 제주대 의대 신설을 끝으로 의대 정원 증가가 끝났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때 의사에게 밀려 의대 정원을 10% 감축했다. '고령화 교과서'인 일본은 1973년부터 신설 의과대를 늘리면서 정원을 늘렸고, 이후 약간 줄였다가 2006년 정원 확대에 나섰다. 상황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했다. 우리도 꾸준히 늘려왔으면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 않고 의사 반발도 크지 않았을 수 있다. 손 놓은 사이에 상황이 나빠졌다. 2021년 한국의 임상의사는(한의사 포함)는 인구 1000 명당 2.6명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명)보다 훨씬 적다.
이번 증원 규모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 전문기관의 수급 전망(2035년 1만명)을 토대로 지난해 10월 윤 대통령에게 증원 규모를 보고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내 8000명을 늘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5~2028학년도 4년 간 연 2000명을 늘리는 것이다.
이번에 늘리는 정원은 비수도권 의대에 집중 배정한다. 지역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졸업 후 지역에 남을까. 정부가 이번에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최소 40%에서 60%로 높이기로 했다. 지역 고교 출신을 뽑는 것인데 효과가 어느 정도 검증됐다. 동아대는 2024학년도 입시에서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80%에서 89%로 높였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고3 학생이 대상이다. 동아대 의대 강도영 학장은 "비율을 올린 게 성공적이라고 자평한다"고 말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에서 100% 뽑아도 좋다"고 말한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중학교·고교를 해당 지역에서 나온 학생으로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는 이번에 입학 때부터 지역 근무를 조건으로 선발하는 지역의사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예를 보면 지역인재 선발 의사는 졸업 후 80%, 지역의사제는 90%가 해당 지역에 남는다. 복지부는 의대 신설에는 선을 그었다. 조규홍 장관은 "신설은 고려사항이 많다. 당장 결정해도 2025학년도 입시에 반영할 수 없다"며 "계속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늘린 정원이 필수 의사로 갈지는 미지수다. 조 장관은 "1일 발표한 필수의료 4대 패키지를 잘 추진해서 의사가 유입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필수 분야 전공을 강제할 방법은 없다. 일본은 지역별 전문과목 쿼터를 설정해 인기 분야 진입을 막는 방법으로 필수 분야로 유도한다. 신영석 교수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기피과로) 인력이 흘러갈 것"이라고 말한다. 조승연 인천시의료원장(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은 "의사 절대 수가 부족할 땐 어떤 정책도 먹히지 않았다. 이제 인력을 늘리는 기본적인 일을 했으니 디테일 정비가 필요하다"며 "늘린 인력이 미용 쪽으로 못 가도록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갑작스런 증원에 의대 교육이 감당할지도 관건이다. 한 지역의대 학장은 "지금도 학생이 많다"라며 "의대는 현장 수업이 중요한데 해부학·임상 실습 강의실이나 교수진 등이 따라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의대 학장은 "기초의학 교수가 거의 없다. 과학 전공자가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서울대 의대 학장)은 "의사 수를 증원하려면 교육 자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데 정부가 국립대는 지원하겠다지만 30개 사립대는 선을 그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에 '2031~2035년 1만명 추가 배출' 스케줄만 제시했다. 2000명 늘린 정원을 멈출지 계속할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조 장관은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토해 필요하면 늘리거나 감축하는 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집단행동 대응이 당장 발등의 불이다. 정부에겐 여론의 전폭적 지지가 힘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의대 증원은 국민의 80%가 지지한다. 게다가 외국의 예도 정부에게는 유리하다. 일본·미국·독일·영국 등 상당수 선진국은 지난 20년 간 의대 정원을 23~50% 늘렸다. 이 과정에서 의사단체가 반대하며 파업을 벌인 적은 없다.
정부는 대형병원 인력의 핵인 전공의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전공의단체는 파업 찬성률이 88%에 달한다고 공언한다. 이들이 병원을 박차고 나가면 대책이 없다. 2000년, 2020년 의사파업에서 익히 경험했다. 정부 수단이란 게 업무복귀명령밖에 없다. 일각에서 업무방해죄 같은 걸 검토하고 있는데, 쉬워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필수의료대책에서 36시간 연속근무 금지 같은 전공의 달래기 대책을 내놨지만 크게 실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황수연⋅채혜선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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