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데탕트' 절박한 바이든…사우디 빈살만에 블링컨 또 보냈다

김형구 2024. 2. 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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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나 중동 지역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동 데탕트(긴장 완화)’가 절박한 미국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회담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블링컨 장관과 빈살만 왕세자의 면담이 최근 잦아지면서 미 외교가에서 커지고 있는 화두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8일 빈살만 왕세자와 만난 데 이어 5일(현지시간) 다시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와 중동 지역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블링컨 장관의 중동 방문은 이번이 다섯 번째인데, 특히 빈살만 왕세자와의 이번 만남에서 이스라엘ㆍ사우디 관계 정상화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이날 블링컨 장관이 사우디에서 빈살만 왕세자와 만나 가자지구 위기의 항구적 종식과 (중동) 지역 내 긴장 완화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마스의 통제를 받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이후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인 2만7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200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블링컨 장관은 가자지구 민간인 희생에 대한 미국 측 우려를 전달하고 전후(戰後) 가자지구 통치 방안도 논의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익명을 원한 미 정부 당국자는 블링컨 장관이 이번 중동 방문에서 최근 친이란 민병대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습이 중동 지역 확전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라고 미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시아파 민중동원군(PMF) 대원들이 최근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전우들의 영정을 들고 가두 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지난 2일 이라크와 시리아 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과 친이란 민병대 조직 85개 이상의 목표물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미국은 지난달 27일 요르단 내 미군 기지가 친이란 민병대의 드론 공격을 받아 미군 3명이 숨지자 지난 주말 이라크와 시리아 내 이란 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과 친이란 민병대 목표물을 보복 공습했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팻 라이더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추가 대응이 있을 것이며 우리가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앞서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일주일 만인 지난해 10월 15일 중동 순회 방문 때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사태 해법을 논의했었다. 또 지난 1월 8일에도 두 사람의 회담이 있었는데, 블링컨 장관은 당시 면담 후 이스라엘ㆍ사우디 관계 정상화 문제와 관련해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수립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그러려면 가자지구 전쟁 종식과 팔레스타인 국가를 위한 실질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ㆍ사우디 관계 정상화는 중동 데탕트를 핵심 레거시(유산)로 만들려 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주요 외교목표 중 하나다. 블링컨 장관은 앞서 지난해 6월 사우디를 방문해 빈살만 왕세자와 만나 양국 관계의 걸림돌이었던 사우디 인권 문제에서부터 이스라엘ㆍ사우디 관계 정상화 문제까지 폭넓은 분야의 대화를 나눴다. 당시 미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는 상당한 수준까지 논의가 진척됐지만 지난해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스텝이 꼬였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022년 7월 15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알 살만 궁전에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만나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개의 독립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기반한 종전 방식을 추구하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다수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책과 관련해 “유일한 방책은 두 국가 해법이며 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기존 노선을 재확인했다.

이스라엘은 그러나 전쟁으로 확보한 점령지의 영구 영토화 정책을 추진하는 등 두 국가 해법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수뇌부를 완전히 제거하기 전에는 전쟁을 끝낼 수 없다”며 강경론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주도로 이스라엘ㆍ사우디 간 관계 회복을 위한 물밑 노력이 진행 중이라는 징후는 계속 감지되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상원의원들이 지난달 초 사우디에서 빈살만 왕세자와 만나 양국 방위 대화 재개와 이스라엘ㆍ사우디 관계 정상화에 대해 논의했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조건으로 가자지구 종전을 촉구하고 이와 동시에 미국과 방위 관계 회복 및 대(對)이스라엘 관계 개선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이에 따라 블링컨 장관이 이번 사우디 방문에서 각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중동 데탕트 해법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 언급 대신 “더욱 통합하고 번영하는 (중동) 지역 건설에 대해 논의하고 미국과 사우디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했다. 블링컨 장관은 8일까지 중동에 머무르며 사우디에 이어 이집트, 카타르, 이스라엘을 잇따라 방문할 예정이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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