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봄 원조’ 경남교육감 “위에서 찍어누르는 식으론 안 돼”
① 박종훈 경남교육감 인터뷰
학교 공간에서 길게는 저녁 8시까지 초등학생을 돌봐주는 ‘늘봄학교’가 올해 전국으로 확대된다. 교육부 우선순위 목록 최상단에 위치한 정책으로, 초등학생 특히 저학년 하교 시간과 학부모 퇴근 시간의 틈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초등 저학년이 너무 일찍 하교해 발생한 ‘돌봄 공백’때문에 생겨난 ‘학원 뺑뺑이’를 줄여 사교육 부담을 덜고 아이 키우기 편한 환경을 만든다는 목표다.
기대해도 될까. 2021년 ‘늘봄’이란 비슷한 정책을 먼저 도입한 박종훈 경남교육감을 지난 2일 인터뷰했다. 경남의 늘봄은 여러 학교 학생을 정규수업 뒤 거점 학교로 모으는 방식이다. 개별 학교에서 운영하는 늘봄학교와 이 부분은 다르나 저녁까지 돌보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점은 같다. 박 교육감은 “위에서 찍어 누르듯 추진되는 지금 방식으론 일회성 이벤트로 흘러갈 뿐, 현장에 제대로 착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의 늘봄학교가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먼저 교육 자치 훼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장에는 학생이 10명인 학교도, 1000명인 곳도 존재한다. 도심지에 모든 여건이 잘 갖춰진 학교부터 농산어촌의 정말 작은 곳까지 다양하다. 정부가 하나의 기준으로 밀어붙이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교육 자치도 결국 아이들을 위한 일이다. 국가는 ‘아이들 방과 후를 잘 챙겨야 일과 가정이 양립한다’는 큰 틀만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행은 현장에 맡겨야 한다. 그게 아이들을 위해 가장 좋은 정책 방향이다. (정부가) 지금처럼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현장에서 ‘총선용’이란 의심을 받기 쉽다.”
-어떤 문제를 우려하는가.
“교육부가 우왕좌왕했다. 한달 뒤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현장은 뒤숭숭하다. 방과후 정책은 노무현정부 때 사교육 대책으로 시작했다. 당시 (경남도) 교육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교육감으로 재직하며 두 가지 원칙을 정했다. 교사의 가욋일이 돼서는 정규수업도 망가진다는 점, 개별 학교에서는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안 된 것이 늘봄이다. 창원 명서초를 보면 학생이 줄어 별관 하나가 통째로 비었다. 그 공간을 거점으로 인근 10개 학교를 모아 기존 방과 후 학교와 돌봄 기능을 통합했다. 교사 부담도 없고 프로그램 질도 높아 학부모 반응이 좋아 현재 3개까지 확대했다.”
-교육부가 우왕좌왕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늘봄학교 운영 인력에 대한 개념도 없이 시작했다. 교육부도 교사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은 있었다. 학교에 기간제 교사를 추가 배정하는 방식이면 교사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간제도 엄연한 교사다. 나중에 업무가 섞이고 교사 부담으로 넘어오면 본래 교육활동도 타격 받는다는 게 교사들의 생각이다. 반발이 나오자 (교육부는) ‘어떤 게 맞는가’라며 급히 묻고 다녔다. 그리고 기간제 교사 배치는 ‘한시적’ 조치라며 발을 뺐다. 하지만 어떤 지역은 기간제 교사가 이미 900명이나 배정됐다. (교육부가) 현장을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경남이 교육부의 늘봄학교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기간제 교사 배치는 애초 받지 않았고 별도 인력을 배정한다.”
-정부를 질타했는데, 교육청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나.
“새로운 돌봄 모델을 제시하려고 한다. 작은 학교를 연계하는데, 의령군에서 시작한다. 초등학교가 13개 정도 있는데 5년 뒤에도 살아남을 곳은 3개다. 이 3곳을 거점으로 작은 학교를 연계해 오전에는 원적 학교에서 오후에는 거점 학교로 모여 공부한다. 올해까지 점심을 각자 학교에서 먹지만 내년부터 거점에서 같이 먹는다. ‘공동학교’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저녁까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늘봄학교와 다른 점은) 지자체가 한 축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교육청과 지자체, 시민사회가 공간을 제공하면 교육청과 지자체가 예산을 반씩 부담한다. 군마다 2~3개 정도 만들고 작은 시 지역도 만들 수 있도록 시장·군수들과 논의할 것이다.”
-경남도의 중·고교 정책은.
“진로교육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단순히 직업을 체험해보고 진로·적성 상담을 해주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AI)으로 과학적 진로 설계를 해준다. 경남은 전국 최초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습 플랫폼인 ‘아이톡톡’을 시작했다. 현재 교수·학습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이의 관심사나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영역을 좀 더 과학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학생에게 좋은 점은.
“핵심 대상은 중학생이다. 중학생 절반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른다. 지금 중학교에는 진로 과목이 개설돼 있고 진로교사도 있다. AI와 진로교사, 학부모가 협업해 학생과 진로를 설계한다. 예컨대 초등학교 6년 동안 읽은 책만 봐도 윤곽이 나올 수 있다. 학습적인 것뿐 아니라 사회·정서적인 데이터도 (아이톡톡에) 쌓이고 있다. 이 데이터로 진로교육에 특화된 플랫폼을 구축한다. 내년 3월 개원 목표다. 내년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와 맞물려 있다. 고교생이라면 주도적으로 수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고교 가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1학년은 지나가버린다. 고1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쓸 내용이 있으려면 중학교 진로교육이 중요하며, 고교에서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 효과를 높이고 공교육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학교에서 하는 진로적성검사로는 부족한가.
“예를 들어 학교에서 정서행동특성검사라는 걸 한다. 자살 등 고위험군을 찾아내는 검사다. 하지만 큰 문제가 나타나는 학생들이 고위험군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하는 아이들은 이미 어른들이 원하는 정답을 안다. 정서행동특성검사 같은 일회성 검사에서는 거짓말 할 수 있어도 축적된 데이터 앞에선 거짓말 하기 힘들다. 과학적인 진로교육도 비슷한 맥락이다. 교사들과 학부모, AI가 협력하는 체계가 만들어지면 중·고교 진로교육이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교육부가 내년 3월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
“우리가 구축한 AI 플랫폼과 충돌해 갈등 일으킬 사안은 아니고 협업하면 좋을 것이다. 다만 (교육부가 도입하는 AI 디지털교과서는) 학교의 학습 데이터가 사기업에 넘어간다. 걱정되는 부분이다. 우리도 (아이톡톡 만들 때) 네이버와 협업했다. 만약 네이버 쪽에서 우리 학습데이터를 강하게 요구했으면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는 정보 제공을 하지 않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네이버측은) ‘민감한 학생들의 정보를 가져왔다가 추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 했다’고 들었다.”
-정부가 미취학 단계에선 유보통합(어린이집 유치원 통합), 초등에선 늘봄학교를 저출산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다.
“학생·학부모에게 실질적 혜택이 가고, 저출생 극복하는 수단으로 작동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해서 갈 수는 없다. 일단 시작하고 수정 보완해 가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가) 유보통합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일단 추진하고 본다는 느낌이 든다. 정부는 내년에 유보통합을 시행하고 2026년 완성한다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지금부터 1년이 준비 기간이라면 하늘이 내려둔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하다. 행정적 통합, 물리적 통합이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통합의 목적이 무엇인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주는 것이다.”
-유아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인가.
“정부와 지자체들이 지금까지 어린이집이 쏟은 예산을 전부 하나도 빠짐 없이 (교육청으로) 넘겨주면 현상 유지는 될 것이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투입된 예산은 공식적인 것도 있지만 비공식적인 것도 있다. 비공식적 지원까지 전부 넘어와야 비슷한 질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서비스는 매우 다양하다. 종일반도 시간제도 2시간짜리도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가 다 찾아내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자체 등이) 절대로 다 안 줄 것이다. 지자체도 (유보통합 뒤에도) 어린이집에 이것저것 지원도 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면 결국 종전에 어린이집에 투입되던 것보다 작은 예산이 올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선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어린이집이 교육청으로 넘어왔을 때 학부모 비난이 솔직히 두렵다.”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는가.
“유보통합은 힘들어도 하긴 해야 한다. 지금처럼 유치원·어린이집 이원화로 부작용이 크다. 하지만 당장은 겁이 난다. 그래서 일단 연기를 요청하고 싶다. 정부가 너무 급하다. 교육청 입장에선 1년 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다. 특히 정부가 ‘교육청은 돈 많으니까’라며 밀어붙여 버릴까봐 걱정된다. 만약 이러면 다른 교육감들과 뜻을 모아 연기를 추진해볼 생각이다.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쉽게 예상하기 어렵지만 예를 들어 어린이집 질이 떨어진다는 원성을 교육감들이 듣게 되면 교육청들은 종전 초·중등 학교에 가던 예산을 줄여 어린이집에 넣을 수 있다. 기존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문제다.”
-3선 교육감으로 마지막 임기인데 포부가 있다면.
“3선 교육감 12년 임기 중 10년차에 마무리한다는 마음가짐이면 곧바로 레임덕이 온다. 앞서 언급한 새로운 돌봄 모델을 지자체와 협력해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 체계를 만들어놓으면 교육감 임기가 끝날 것이고 향후에는 후임자와 정부가 맡아줬으면 한다. 올해는 유보통합과 새로운 돌봄 모델 개발, 이것만 해도 큰 일일 것이다.”
창원=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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