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의사인데요, 제 딸은 거식증 환자였습니다
거식증, 폭식증 같은 하위 질환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섭식장애(Eating Disorders)는 현상으로서의 증상만 놓고 보면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 깊은, 인간적인 질환이다. 지난 5년간(2018년~2022년) 섭식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총 5만여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숨은 환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모임으로, 지난 2023년 2월 말 국내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주최했다. 올해도 두 번째 행사(2/28~3/5)를 준비 중이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고 준비해 온 과정과 고민을 펼쳐 보이고,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과 가족 그리고 치료자의 글을 통해 지금-여기에서의 섭식장애의 진실을 밝히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임옥주]
저는 거식증을 '앓았던' 딸의 엄마입니다. 사실 이렇게 과거형으로 써도 괜찮을지 백퍼센트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사십대 중반에 이른 지금, 돌아보니 삶에서 어떤 문제가 무 자르듯 확실한 일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 자체가 워낙 낫기 어렵고 재발도 많다고 알려진 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득 담아서, '앓았던'이라는 과거형으로 꾹꾹 눌러 써봅니다.
제 딸이 자연스럽게 먹을 수 없다는 것을 몇 해 전, 그러니까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늦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무렵 알았던 것 같습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과 떠올리기 싫다는 마음의 저항이 있어서인지, 모든 기억은 대강의 이미지로만 기억날 뿐 숫자는 아리송해 여기저기 흘린 자료를 뒤늦게 뒤적여 대충 맞출 뿐입니다.
▲ 섭식장애와 모녀관계를 그린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김보람 감독, 2022) 중 한 장면. 영화의 주인공인 딸 박채영이 과거를 회고하며 그린 그림이다. |
ⓒ 김보람 |
아이가 4학년이던 겨울, 딸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약간은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길에서 낯모르는 할머니에게 혼났다는 이야기를 했더랬습니다. "손모가지가 그게 뭐여 사흘 피죽도 못 먹은 애마냥. 느그 엄마는 아냐?" 저는 이 말을 듣고도 두꺼운 겨울 스웨터 속에 감춰진 딸의 몸이 자꾸만 말라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당뇨병과 고혈압을 걱정하는 내과의사인지라, 요즘은 소아 비만이 문제인데 뚱뚱한 것보다야 낫지 뭐가 문제냐고 생각했더랍니다.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고 모두 집에서 생활할 때도 딸은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엄마가 출근한 후에 줌 수업 참여도 잘해서 특별히 걱정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도 복스럽게 밥을 먹는 편은 아니었던 터라 아이의 식습관이 변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럼 제가 뭘 가지고 딸에게 섭식장애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됐을까요? 답은 화장실입니다. 딸이 아직 어려 용의주도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요? 집 화장실 전등이 고장나서 잠시 캠핑 랜턴을 사용한 기간이 있었습니다. 불이 어두워서였는지 딸은 변기에 뱉어 놓은 음식이 다 내려가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이어서 들어간 제가 그 잔해를 발견했습니다.
변명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눈 여겨 의식하지 않고 아이를 대한다면 가족 중 누군가 섭식장애를 앓고 있어도 다른 이들이 눈치채기는 이렇게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가 없다면, 아이가 섭식장애 증상에 깊이 휘말릴 때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갑니다.
이제 병을 인식했으니 치료만 잘 받으면 바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요? 아뇨, 저는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았습니다. 섭식장애를 공부하거나 정신과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오래 전 교과서에서 얼핏 보았던 거식증의 예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병원으로 냅다 달려가고 싶었지만, 좋은 의사 선생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리고 마음을 놓고 싶었지만, 섭식장애가 몇 번의 진료나 단기간 입원으로 좋아지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단은 지속 가능한 치료 방법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 섭식장애를 다룬 영화 <투더본(To The Bone)>(마티 녹슨, 2017)의 한 장면. 마티 녹슨 감독의 자전적 경험에 기반한 내용으로, 미국의 대표적인 섭식장애 자선단체인 '프로젝트힐(Project HEAL)'의 자문 하에 제작됐다. |
ⓒ 넷플릭스 |
딸의 섭식장애 치료의 큰 걸림돌 중 하나는 제가 사는 지방에 섭식장애 전문 병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제가 사는 곳뿐 아니라 서울을 제외하고 섭식장애만을 치료하는 병원은 전국에 거의 없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의 대학병원 소아정신과조차도 섭식장애 환자를 섬세하게 봐주지는 못합니다.
당시 아직 상대적으로 양호한 BMI(체질량지수) - 17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 였기에 일단은 집에서 제가 식사 감독을 하기로 했습니다. 동시에 열심히 수소문해 뵙게 된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하시지는 않으셨으나 학생 상담을 오래 하셨고 이전에 섭식장애가 있는 학생을 상담하신 경험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호전이 없으면 방문해야 할 병원 목록까지 일단은 받아두고서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전문가의 개입이 시작됐으니 딸은 금방 좋아졌을까요? 그렇다면 섭식장애가 그렇게 예후가 나쁘다고 알려졌을 리 없겠지요. 환자분들께 제가 '당뇨병이시네요, 고혈압이에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들 한 번씩 물어보십니다.'원인은 뭔가요? 우리 집에 당뇨 환자 없는데, 저 단 것 짠 것 하나도 안 먹어요. 제가 뭘 잘못했을까요?'
이런 질문은 원인을 알면, 또는 그 원인을 제거하면 병이 생기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즉, 인과 관계를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인간의 기본 사고방식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병을 귀결시킨 인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그 많은 위험 요인을 몽땅 피하거나 없애기는 불가능하며, 더욱이 원인을 다 교정해도 몸이 저절로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기 때문에 사실 '왜?'라는 질문은 이런 상황에선 그저 막막한 질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규칙적으로 약을 먹고, 운동하고, 당뇨, 고혈압에 적합한 식사를 해야 병과 함께, 그러나 그런대로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요.
섭식장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상담을 시작하고 딸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밥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는지, 학교에서 친구들과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가족에게 혹 어떤 원망이 있었는지, 자기 자신에게 불만족했던 까닭은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을 속시원하게 알아내지도, 그 중 무엇 때문에 병이 시작됐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입을 꾹 다물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전보다 많은 말들이 오고 갔지만, 제가 보기에 아이가 붙들고 있는 거식증은 어쩌면 더 이상 '왜?'가 중요하지는 않아진 무엇이었습니다. 그 많은 '왜?'를 찾아낸들 어차피 거식증은 어떤 이유로든 아이 곁을 쉬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슴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르고 또 한편으로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저와 딸이 겪은 지난한 회복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는 것이 불필요할 것 같지만, 대강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둘이 함께 추는 왈츠처럼 아이가 왼발을 내밀면 저는 오른발을 빼면서 그때그때 아이에게 맞추면서 식사 감독을 했습니다.
식탁에서는 늘 날이 서 있고, 아이의 구토로 막힌 변기를 뚫고, 집 안 구석구석 숨겨놓아 곰팡이가 피고 벌레가 꼬이는 씹다 뱉은 음식을 치우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도 싹트기 마련입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아이는 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까? 처음에 딸에게 들었던 안쓰러운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딸을 매섭게 비난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습니다.
▲ 영화 <투더본>의 한 장면. |
ⓒ 넷플릭스 |
그러나 쉽지 않은 그때, 우리 관계를 무너뜨리거나 선을 넘지 않도록 저를 붙들어 준 것은 관련한 책과 음악, 영화였습니다. 거식증 환자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도와준 책 <삼키기 연습>, 힘들 때마다 차 안에서 무한반복으로 듣던 양희은의 노래 '엄마가 딸에게', 그리고 2017년 영화 <투더본(To The Bone)>. 거식증으로 힘들어하거나 고민하는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영화 <투더본>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 거식증 경험자여서인지 대사 하나하나가 허투루 쓴 것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제가 손으로 꼽는 장면은 거식증 환자인 주인공이 몹시 피폐해진 상태로 자신을 낳아준 친엄마를 찾아가자, 엄마가 그간의 모든 변명을 그만두고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부분입니다.
"네가 세상을 떠나면... 난 다 이해해. 네가 죽는 걸 바란다면 그것마저 이해할게... 난 너를 사랑하니까."
주인공은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으로 1년, 2년 견디다 보니 어느 순간 느슨해진 거식증에서 딸을 되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겪은 거식증을 썼습니다. 딸에게는 딸이 스스로 겪은 버전의 거식증이 있겠지요.
상담은 사실 거식증 자체에 개입했다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길러줬다고 생각합니다. 잘 사는 대한민국에서도 광역시에 살고 있지만, 저희에게도 거식증은 오롯이 엄마와 딸의 몫이었습니다. 너무 어렵고 무거운 짐이 엄마에게 지워지지만, 그 누구도 돕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스스로 챙길 뿐이지요.
저는 내과 의사입니다. 비교적 병에 대한 이해도 높고 정보를 찾는 능력도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제력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집중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섭식장애 전문 병원에는 가 보지 못했습니다. 거리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지요. 세상에는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딸과 엄마가 많을 텐데, 그들은 어쩌면 감옥같이 사방을 둘러싼 벽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입니다.
이렇게 고립되고 갇혀 있는 섭식장애 환자와 가족은 세상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거라 단언합니다. 딸의 거식증을 인식하자마자 제가 보는 외래 환자, 오가는 학생들, 아이 친구들 가운데 섭식장애 환자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없었던 그들이 갑자기 나타나서가 아니겠지요. 눈 앞에 두고도 우리가 그들을 보지 못했던 까닭이었을 겁니다.
만약 제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쉽게, 덜 아프게 견디고, 시행착오를 줄여서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항상 있습니다. 섭식장애 환자와 가족에게는 더 많은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고, 섭식장애 이야기는 지금보다 더 많이 알려져야 합니다. 제 경험을 담은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임옥주(필명)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의 가족입니다. 내과 의사이자 어린 딸의 섭식장애 경험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엄마로서 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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