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의' 외치는 시대... 다시 듣는 '밀양 할매' 이야기

김홍규 2024. 2. 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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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와 젠더 관점에서 구술 서사와 연행을 연구하는 김영희가 책 <전기, 밀양-서울> 을 펴냈다.

책과 뉴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마치 내가 '밀양 할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고 착각했다.

"송전탑이 휩쓸고 간 자리마다 남은 것은 온통 폐허다"(책, 171쪽). 하지만, 밀양의 할머니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웠고, 그 폐허에서 아직도 싸우는 이유가 <전기, 밀양-서울> 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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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가 쓴 <전기, 밀양-서울> 을 읽고

[김홍규 기자]

공동체와 젠더 관점에서 구술 서사와 연행을 연구하는 김영희가 책 <전기, 밀양-서울>을 펴냈다. '밀양 할매' 이야기를 담았다. <밀양을 듣다>, <송전탑 뽑아 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나>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운동이 탈송전탑 탈핵 운동으로 나아간 과정의 이야기를 펼쳐 놓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책, 7쪽)
 
나는 밀양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한 번 가본 적도 없으면서. 책과 뉴스,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마치 내가 '밀양 할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고 착각했다. <전기, 밀양-서울>을 읽기 전까지. 송전탑이 세워진 이후 그들의 싸움이 끝났다고 함부로 단정하기도 했다. 애써 그들과 연결된 삶을 외면했다.
 
"데모하려 서울에 갔는데 마 삐까뻔쩍하이, 마 정신이 읎어. 마 대낮겉이 밝아갖고 훤-하이 그란데 마 퍼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꼬. '아 여 이래 전기 갖다 쓸라꼬 우리 집 앞에다 송전탑 시운(세운) 기구나' … '그라믄 전기 만드는 데든 송전탑이든 여 갖다 세우지 와 남의 땅에다 시와(세워) 놓고 이래 느그는 팡팡 에어컨 돌리고 야밤에 온 시상(세상)을 대낮겉이 밝혀 놓고 이라노 말이다', 이런 생각이 드는 기라." 여, 60대 (책, 16쪽)
 
밤낮없이 불을 켜고, 노트북과 핸드폰을 끼고 살면서, 그 '전기의 출발'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았다. 사는 곳 주변 발전소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가는 송전탑을 보면서도, 도로에 서 있는 전봇대와 전깃줄을 마주하면서도 그랬다. 뉴스에서 사라지자 관심도 희미해졌다.
책은 밀양에서 공기업과 국가 권력이 주민들에게 무슨 짓을 벌였는지, 어떤 가치를 빼앗았는지를 '할매'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준다. 토지 수용 동의서 도장을 받기 위한 한국전력의 집요한 괴롭힘, 친인척과 자녀까지 이용한 회유와 협박, 마을 주민 사이의 분열 조장과 마을공동체 파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일방적 한국전력 편들기, 형식적 절차와 제도를 통한 시간 끌기,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 폭력 행사, '돈'을 앞세워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가기, 고립시키기와 고사 작전, 계획 내용과 실행 과정 숨기기, 주민들의 자존감 훼손과 무력감 심어주기 등.
 
"자본과 권력이 결합하여 국책 사업의 명분을 띠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파고들어 난도질하는 것은 송전탑 건설에서만 나타나는 장면이 아니다. 새만금도, 성주 사드도, 제주 해군기지와 제2공항도 모두 이와 같은 자본과 권력과 국가의 공고한 결합 위에 서 있다. 한국전력의 대응 매뉴얼은 … 공기업과 민간 자본과 군과 경찰과 지방자치단체와 그 밖의 국가 기관들이 힘을 합쳐 휩쓸어 온 모든 현장에서 이들이 반복해 온 폭력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책, 135~136쪽)
 
글쓴이는 '밀양 할매'가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지, 어떻게 싸웠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귀 기울여 들었다. 자신이 들은 바를 책에 풀어냈다. "송전탑이 휩쓸고 간 자리마다 남은 것은 온통 폐허다"(책, 171쪽). 하지만, 밀양의 할머니와 연대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웠고, 그 폐허에서 아직도 싸우는 이유가 <전기, 밀양-서울>에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밀양 할매'는 한국 에너지 정의와 탈핵 운동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었고, 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밀양 할매'는 탈송전탑 탈핵 운동가이고,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음 세대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해 기후 정의 실천의 첫발을 내딛었다." (책, 383쪽)
 
'밀양 할매'는 여러 곳에서 이 땅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했다. 땅을 딛고 오랜 세월 살아온 소나무, 꽃, 나비, 산짐승이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송전탑이 실어나르는 핵발전소 전기를 막으려고 싸웠다. 글이 아닌 경험과 몸이 보내는 '경고 신호'를 통해 송전탑이 자연과 사람을 파괴할 것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밀양 할매'는 '탈핵 운동가'이고, '기후 정의' 실천가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처받은 마음을 함께 들여다보고 회복을 위한 노력을 존중하며 다음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이야기를 하고 들은 이들은 기억하게 될 것이고, 기억하는 이들은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절망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부서진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책,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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