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봉이 김선달' 불법 토사브로커 실체 밝혀낸 검찰

최석진 2024. 2. 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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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지청, 폐토사 불법매립 브로커 사건 진범 밝혀내
집유기간 중 범행 발각되자 지인 내세웠다 덜미

경기도 고양·파주 일대 국유지에 폐토사를 무단 매립해주고 고수익을 올려온 토사브로커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 브로커는 동종 범죄 집행유예 기간 중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가 발각되자, 토사를 매립할 땅을 소개해준 지인에게 돈을 주고 자신의 단독 범행인 것처럼 경찰에서 허위 자백을 하게 시켰는데, 검찰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사진=연합뉴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공공·부패 전담부(부장검사 조은수)는 최근 불법 토사매립 브로커 A씨를 개발제한구역법 위반 및 공유재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A씨 대신 진범 행세를 한 B씨를 개발제한구역법 위반 및 범인은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고양·파주 일대에서 토사 매립 브로커로 활동해온 A씨는 국방부 소유 토지에 토사를 무단 매립했다가 지난해 4월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A씨는 개인소유 토지에 골재가 많은 토사를 매립할 경우 발각돼 신고를 당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해 상대적으로 관리가 소홀한 국공유지를 찾아 폐토사를 무단으로 매립해주고 돈벌이를 해왔다.

고양·파주 일대는 도시개발로 다수의 공사 현장에서 폐토사가 다량 발생하고 있는데, 공식적인 처리업체를 통해 처리할 경우 비용이 많이 발생해 터파기 및 덤프트럭 업체들이 이른바 '브로커'가 알아 온 토지에 이를 매립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 등 직접 폐토사를 불법 매립하는 이들은 적발됐을 때를 대비해 자신들은 단지 토지 소유주와 폐토사를 버려야 하는 공사업체를 연결해주는 브로커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할 때가 많아 '토사브로커'로 불린다고 한다.

A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지 두 달 만인 지난해 6월 지인 B씨의 소개를 받고 도로 예정 부지이자 그린벨트 지역인 고양시 성사동 토지 약 6900㎡에 폐토사 약 4500t 분량을 무단 매립해 3일 만에 약 1000만원의 불법수익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집행유예 기간 중인 점을 고려해 B씨에게 토지 소개비 겸 범행 발각 시 허위 자백을 해주는 대가로 200만원을 지급했다. 불법 토사 매립 초범인 경우 토지 원상회복을 약속하면 검찰이 대체로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한다는 점을 악용하려 한 것.

이후 실제 인근 주민의 신고로 불법 매립 사실이 발각되자 B씨는 경찰에 출석해 자신의 단독 범행이라고 허위 자백을 했다. 경기 고양경찰서는 이 같은 B씨의 자백에 따라 B씨를 개발제한구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한 뒤 검찰로 송치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김명섭 검사(변호사 시험 10회·현 전주지검 군산지청 소속)는 불법 매립지 현장검증을 마친 뒤 B씨를 소환해 조사했는데, 조사를 하면 할수록 B씨가 진범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김 검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 매립지의 상태나 성토 경위와 B씨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았던 것.

또다른 진범을 의심한 김 검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B씨의 계좌 거래명세와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차명계좌를 이용해 A씨로부터 200만원을 입금받은 기록을 찾아냈다. 또 A씨가 자신의 내연녀 계좌를 통해 건설업체로부터 수천만원을 송금받은 사실과 대포폰을 사용한 정황을 확인했다. A씨가 불법 토사 매립으로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도박에 사용한 사실도 확인했다.

김 검사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A씨는 검찰의 연락을 피하다 결국 영장실질심사에도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다. 김 검사는 A씨의 휴대전화기지국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영장 발부일로부터 3일 만에 고양시 모처에 숨어있던 A씨를 검거했다.

김 검사는 "고양지청에서 2년 간 근무하면서 불법 토사브로커들이 거액의 불법수익을 얻고 있다고 의심은 됐었는데, 이번에 처음 차명계좌를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한달에 1500만원 정도씩 수익을 올렸는데, 특별한 능력 없이 '어느 땅에다 흙을 갖다 버려라'라고만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할 만하다"라며 "이처럼 걸리지만 않으면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적발이 되고도 토사브로커들이 이 일을 끊지 못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김 검사는 이번 수사를 통해 불법 토사 매립 혐의로도 구속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A씨의 경우 불구속 기소됐다면 이전 범죄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이 도과되기 전에 이번 사건의 확정판결이 나오기가 어려웠지만,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진 만큼 앞선 집행유예가 실효돼 복역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 검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에서 자백을 하면 그대로 검찰로 송치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졌고, 검찰 역시 일이 많다보니 경찰에서 자백한 사건은 그대로 처분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라며 "경찰에서 자백한 사건을 의심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지만 조금 의심스러워서 보강 수사를 한 사건에서 완전히 허위 자백을 한 피의자와 진범이 밝혀졌다는 점에서 요즘 수사기관의 현실에 대해 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공유지에 토사를 매립하는 브로커들은 주로 신도시에서 활동하며 별다른 노력 없이 수천만원의 불법 수익을 얻고 있고, 터파기 업체도 사실상 이를 알고 방치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라며 "앞으로도 이러한 폐 토사 매립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해 관련자들을 밝혀내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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