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경마장'을 끝내기 위해... 이 법안이 통과돼야 합니다
[박진현 기자]
▲ 한국마사회법 개정안 처리촉구 기자회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 엄길용)와 한국마사회적폐청산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지난 1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한국마사회법 개정안 처리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 공공운수노조 |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의 핵심적인 내용은 세 가지이다. 우선 공기업인 마사회가 공공성을 지켜야 할 책무가 있음을 명확히 했다. 마사회의 사업을 '공공성에 입각하여 수행'하도록 법의 목적을 바꾸었다. 둘째 마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동안 현행 법률에 규정조차 없었고 마사회의 주체로 인정되지 못했던 마필관리사를 법에 명시했다.
그리고 마사회의 모든 정책을 심의하는 말산업발전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게 하고,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게 했다. 셋째 마사회가 말의 복지 증진과 보호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을 하도록 규정하여 말 복지 증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죽음으로 알린 충격적인 경마장 현실
이번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이 상정되기까지는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2017년 마필관리사 박경근, 이현준의 죽음과 2019년 문중원 기수의 죽음이 있었다.
▲ 고 박경근.이현준 열사 투쟁 백서 지난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박경근, 이현준 열사 투쟁백서 |
ⓒ 박진현 |
말이 좋아서 그 일을 한다는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어떤 노동을 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X 같은 마사회'라며 '진짜 썩어빠진 마사회. 시궁창처럼 썩었다'라고 유서에 남겼다. 2017년 5월 24일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와 같은 해 8월 1일 고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연이은 죽음은 경마장의 충격적인 현실을 우리 사회에 알렸다.
최저임금에 가혹한 장시간 노동
"2004년에 경마장이 문을 열었을 때 마필관리사에게 책정된 임금이 40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팀장으로서 마필관리사 중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았는데 월 118만 원을 받았어요. 팀원들은 9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어요."
고광용 지부장의 주장이다.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마필관리사에게 직접적인 사측은 조교사다. 하지만 조교사 역시 마주와 위탁관리계약을 맺는 관계다. 마주 위에서 마사회가 있다. 고용구조가 복잡하고 다단계다.
마사회는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했다. 개인마주제는 마사회 직원이었던 조교사, 마필관리사, 기수를 각각 자영사업자, 비정규임금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리해 관리하는 구조로 바꿨다. 관계의 외주화로 마사회가 가진 전권은 오히려 막강해지고 책임은 면피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에 최저임금만큼의 급여만 겨우 받는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100시간을 넘는 가혹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있다.
"그 당시 제가 새벽 3시 30분에 일을 시작했어요. 퇴근은 저녁 7시예요. 그런데 맨날 퇴근하는 게 아니고 일주일에 많이 퇴근하면 3일이에요. 4일은 여기서 자요. 주 52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일주일에 100시간은 넘게 일했어요."
지금은 어떨까. 과거에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도 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은 최저임금에 맞춰 임금을 받는다. 고 지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주 52시간 기준으로 280만 원 정도라고 하니, 과거와 비교해 많이 올랐지만 기본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 이상 받는 것은 경마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여전히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 마필관리사다.
부상을 달고 사는 마필관리사
마필관리사는 길들지 않은 말을 훈련하고 관리해 경주마로 투입하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말에서 떨어지고 밟히고, 채이고, 끌리는 사고로 인해 상해를 당하고 장애 판정까지 받는다. 산재로 인한 후유증과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일하다 다치는 마필관리사들 중의 상당수가 골절을 당한다는 게 고 지부장의 설명이다. 말들은 야생에서 돌아다니고 풀을 뜯어 먹으면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이다. 이런 말들을 한 평 조금 넘는 마방에 가둬놓고 키우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말이 사람을 차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광용 지부장은 "말은 오랜 기간 사람들하고 생활해도 주인을 알아보지 않습니다. 말은 가축이 아니에요. 매일 밥 주고 목욕시키고 진료해줘도 말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뒷발로 차버리거나 앞발로 찍어버려요. 그래서 산재는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는 높은 산재율로 고통받고 있지만, 과거에 산재 신청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또, 2017년 이전 마필관리사는 일상적인 폭행에 시달렸다는 게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병원 가서 치료도 하고 예전보다 좋아졌다. 다치면 산재나 공상 처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죽음으로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이들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었다.
2017년 박경근 마필관리사와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죽음 이후 조교사협회를 통해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기로 노사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협회를 가입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조교사들이 생겼다. 고광용 지부장은 "이들 조교사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마필관리사로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 2 노조가 부산경남경마공원에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 고광용 지부장 고광용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장이 한국마사회법 개정안 처리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있다. |
ⓒ 공공운수노조 |
한국마사회법 개정안은 마사회의 모든 정책을 심의하는 말산업발전위원회에서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하게 하고,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위원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마사회가 노동자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현재 구조를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윤미향 의원은 "발의된 법안이 초안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해관계자 의견수렴과 조율을 통해 끌어낸 합의안이니만큼 현장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노동자 대표가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통해 말산업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법안 발의에 함께한 채일택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마사회의 매출이 7조 원으로 성장하는 동안 말들의 복지는 제자리걸음이었고, 관련 조항은 전무 하다시피 했다"라며 "그러는 사이 말들을 지칠 때까지 달리고, 부상 당할 때까지 달리고, 이 끝 없는 경쟁에서 밀리면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죽음의 레이스를 이어왔다"고 밝혔다.
이번 마사회법 개정안에는 말산업발전위원회 위원 자격에 동물보호단체의 임직원 또는 동물복지에 관한 전문성과 경험이 풍부한 자를 추가했다. 또 마사회의 사업 범위에 말의 복지 증진 및 보호시설 설치를 위한 사업이 추가됐다. 고광용 지부장은 2017년 이후 경마장에서 비록 부족하지만, 말의 복지가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말했다. 사람이 채찍을 맞았던 과거에 말의 복지는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번 마사회법 개정안은 어렵게 만든 집단적 노사관계를 해체하고 경마장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마사회의 시도를 저지하는 법안이다. 더 나가 마필관리사와 기수를 마사회의 한 주체로 인정하게끔 하는 작업장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 이와 함께 말 복지 없이 100년을 이어온 경마산업과 관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전환점이다. 21대 국회가 그 임기를 마치기 전에 꼭 통과시켜야 할 법안 중 하나가 마사회법 개정안이다. 죽음의 레이스, 경마장을 끝내는 데 국회가 그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진현씨는 공공운수노조 부산본부 조직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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