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급 받은적 없다" 72%…탈북민 6351명의 참혹 증언
"이제 거의 50%는 다 (휴대전화를)가지고 있어요. 그걸로 장사 연계도 하고 기본 전화들 다 쓰고, 가족들이 보고플 때도 영상통화도 하고 하니까. 사회의 흐름이 그러니까 너도나도 전화를 쓰죠." (2019년 탈북민)
"피아노 배워주고, 영어 과외, 컴퓨터 과외 다 시키고 있고. 돈 많은 집 자식들이 저렇게 사교육에 돈을 투자하는데 안 될 수가 있겠어요. 북한에서 제일 1위인 이과대학 보낸다고 하고." (2019년 탈북민)
"청바지 같은 거 바짝 붙는 거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다니면 잡혀서 벌금 물고 그래요. 내가 단속되었잖아요. 그래서 막 아니라고 그러면 그 사람 배(부아)를 돋우었기 때문에 (옷을)찢기도 해요." (2018년 탈북민)
통일부가 6일 공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에 등장하는 탈북민들의 인터뷰 중 일부다. 보고서는 2013~2020년 사이 조사한 탈북민 6351명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다. 붕괴한 배급제, '백두혈통'에 대한 반감 확산, 양극화 심화 등 북한의 내부의 최근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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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서 더 와해한 배급제
정부는 그간 매해 탈북민을 대상으로 실태보고서를 작성해왔지만, 일반에 공개한 건 처음이다. 이전에는 탈북민 개인정보 노출 우려 등을 고려, 보고서를 3급 비밀로 분류했다. 올해 10년간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보고서를 공개한 건 북한 실상을 바로 알리자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북한 인권 증진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북한 실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북한을 올바른 변화로 유도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를 준비하기 위한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배급제 붕괴 속도는 더 빨라졌다. 2006~2010년 탈북한 응답자 중 "식량 배급을 받아본 적 없다"는 답변은 63.0%였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6~2022년 탈북민 중에서는 72.2%로 10%p 가까이 늘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은 후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계획경제와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갈수록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장마당에서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난과 민생난의 원인은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의 왜곡된 정책과 경제 지출"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이후 핵 개발에만 총 11억~16억 달러(약 1조 4690억~2조 1368억 원)를 투입하는 등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재정을 쏟아붓느라 민생고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여기엔 2016년부터 본격화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국경 봉쇄로 북한 정권의 수익 자체가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에 단행한 화폐개혁 실패 이후 북한 내에서 달러 등 외화 통용이 크게 늘어난 것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외화 통용은 접경지역에서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보유 화폐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외화만 보유했다는 응답이 꾸준히 증가했다.
'3대 세습', '백두혈통' 향한 차가운 시선도
권력 세습이나 백두혈통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늘었다. 김정은 권력 승계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집권 직전인 2006~2010년 탈북민 중에는 36.6%였는데, 김정은이 각종 숙청 작업 등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한 2016~2020년 탈북한 이들 중에서는 56.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판 '로열 패밀리'인 '백두혈통'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에 탈북한 이들 중에는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30% 내외 수준이었는데, 김정은이 집권한 직후인 2011~2015년 탈북민은 42.6%가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2016~2020년 탈북자 중에는 절반이 넘는 54.9%가 백두혈통 세습에 반대했다.
체제에 대한 반감이 높은 탈북민 대상 조사라는 점을 감안해도 이런 상승 추이는 주목할만 하다는 지적이다. 김정은이 딸 주애를 후계자로 시사하는 가운데 백두혈통 4대 세습에 대한 내부 인식은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는 김정은 집권 이후 주민들의 사상 이완 방지를 위해 사회 전반에 걸쳐 통제와 규율 체계를 강화한 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 감시 및 통제의 강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 김정은 집권 이전인 2011년 이전 탈북한 이들은 50.7%가 매우·다소 강하다고 답한 데 비해 김정은 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2년 이후 탈북한 경우엔 71.5%가 통제가 더 심해졌다고 답했다.
실제 북한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통해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는 그만큼 내외의 정보 유통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방증인데, 보고서에 따르면 외부영상물을 시청했다는 응답은 83.3%에 이른다. 최근 북한 내 컴퓨터, 휴대전화 등 정보기기 사용 역시 확산하고 있다.
심각한 평양-지방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각한 수준이다. 기존 핵심 계층인 당·정·군 간부들의 치부 행위에 더해 사경제 활동을 통해 부(富)를 축적한 돈주 등 일부 상위 계층이 등장하며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2016~2020년 사이 탈북한 이들 중 93.1%가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응답했다.
평양과 지방 간의 생활수준 격차도 이런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지방은 평양보다 공공 서비스 및 인프라 공급에서 훨씬 더 열악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지방(접경 33.9%, 비접경30.1%)은 식량 배급 경험도 평양(60.9%)에 비해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
난방연료의 경우 평양은 석탄(59.2%)·전기(9.5%) 사용 비율이 높았지만, 접경 지역에서는 나무 연료로 난방하는 비율이 72.7%였다. 최근 김정은이 지방경제 활성화에 사활을 걸며 당·정·군 주요 간부들을 투입하는 것도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한 결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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