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리’ 85년 만에 돌아온다…미 보스턴미술관, 사리구는 ‘대여’
일제강점기 때 이 땅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 14세기 고려 선사(禪師)의 사리가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85년 만에 귀환한다. 사리를 담은 사리구의 영구 반환은 협의에 이르지 못했다.
문화재청은 6일 “보스턴미술관이 소장한 ‘은제도금 라마탑형 사리구’를 일정 기간 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이와 별개로 사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양력 5월15일) 전까지 대한불교조계종에 기증하기로 미술관 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사리구의 대여 기간·방법 등은 미술관 내부 검토와 추후 협의를 거치기로 했다.
사리 및 사리구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출된 것을 보스턴미술관이 1939년 한 업자로부터 취득했다고 알려진다. ‘라마탑형’이라는 명칭대로 티베트 양식 불탑의 원뿔형 상륜(相輪)을 지닌 구조이며 높이 22.2㎝, 밑지름 12.1㎝다. 내부에 5㎝ 높이의 팔각당형 사리구 5기가 안치돼 있다. 사리구에 적힌 명문에 따르면 총 22과의 사리가 담겨있었다지만 지금은 석가모니불 1과, 지공(?~1363) 선사 1과, 나옹(1320∼1376) 선사 2과 등 총 4과만 남아 있다.
보스턴미술관은 지공 선사가 창건했다는 양주 회암사를 원 소장처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말 나옹 선사 입적 이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으로 유출된 경로는 밝혀진 바 없다.
고려시대 불교공예미가 집적된 사리구는 국내 남은 게 많지 않아 문화유산으로서 희소가치가 크다.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사리장엄구 등 4건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있다. 보스턴미술관 소장 사리구는 전시 형태라도 국내에 들어온 바 없다. 지난 2009년 조계종 측이 미술관에 사리와 사리구 반환을 요구했을 때부터 문화재청도 발 맞춰 추진해온 이유다.
문제는 불법 유출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미술관 측에 반환을 강경하게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지부진하던 논의는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 김건희 여사가 미술관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물꼬가 텄다. 애초 사리 및 사리구의 일괄 반환을 요구한 조계종이 불교의 성물(聖物)인 사리의 우선 반환으로 무게추를 옮기면서 이번 합의에 이르게 됐다.
불교미술 전문가인 서강대 강희정 교수(동남아학)는 “사리구도 반환 내지 영구임대로 돌아왔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임시 대여라도 순조롭게 추진돼서 국민들이 고려 불교미술의 극세미를 감상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불교미술 전문가는 “사리구 없이 반환되는 사리는 옷을 갖춰입지 않고 돌아오는 것과 같아 아쉽다”면서 “임시대여를 계기로 보스턴미술관 측과 추가 협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사리구의 임시 대여가 이뤄지면 국내 반입 기간 동안 보존처리를 추진할 예정이다. 최응천 청장은 “약 100년 만에 국내에 들어와 처음으로 공개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면서 “이번 합의를 계기로 보스턴미술관과의 상호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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