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글쓰기] 시어머니 없는 첫 명절, 19년차 며느리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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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선 기자]
며칠 후면 설이다. 지난 1월, 폐렴으로 응급실에 가셨다가 갑자기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처음 맞는 명절이다.
"나는 이제 엄마가 없어."
어머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남편이 나직이 내뱉은 말이다. 미리 경험하신 분들의 말대로 장례를 치를 때는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슬퍼할 여유가 없었다. 모든 것이 선택의 연속이었다.
'영정 사진은 준비한 것을 그대로 쓸 것인가, 큰 액자에 확대해서 넣을 것인가. 영정 주변을 장식할 꽃은 얼마짜리로 할 것인가. 수의는 어떤 것으로 할 것인가. 화장한 유골을 넣을 유골함은 기본 옵션으로 할 것인가 진공 기능이 있는 것으로 할 것인가, 그 중에서 어떤 디자인으로 할 것인가 같은 제법 장례와 관계가 있는 것 같은 일부터 손님을 맞을 음식은 육개장이 나을까, 시래기 우거지국이 나을까. 같이 낼 떡은 바람떡으로 할까 절편으로 할까. 술과 마른안주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 도우미 여사님들은 몇 명을 부를 것인가, 발인 전날 점심 즈음 밥과 국, 반찬을 추가로 주문할 것인가 그냥 있는 걸로 버텨볼 것인가'... 돌아서면 선택할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진정한 상실감은 뒤늦게 일상을 살다가 느닷없이 온다고들 했는데 남편을 보니 정말 그랬다. 낮 동안엔 괜찮은 듯하다가도 밤이 되면 문득 실감이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 어머님 없이 맞는 첫 설은 또 어떨까.
배울 기회를 놓쳤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시댁이라 명절날 시댁에 가면 어머님은 이미 불고기와 소고기무국, 삼색나물을 다 해두시고 계셨다. 며느리로는 19년차지만 이번 설에 어머님이 안 계신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할지 생각하면 막막하다. 결혼하고 처음 아버님 생신상을 차리던 그때에 비해 나아진 게 있긴 한가 싶을 정도다. 경상도식으로 팥밥을 해드리려다 팥은 미리 익혀서 다시 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 익지 않은 밥을 드시게 했던 어설픈 새댁 시절의 나란 며느리.
나물은 집에서 해가고 국은 시댁에 가서 끓이기만 하면 되도록 손질을 다 해가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모두가 어머니가 안 계셔도 설날에 먹는 음식은 그대로네, 라고 느낄 만한 명절 음식을 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김장철이 가까워진 어느 날, 친구와 차를 마시면서 왜 몸도 안 좋은 어르신들이 장 담그기나 김장하기를 그렇게 중시하시는 걸까 얘기한 적이 있었다. 몸이 안 좋으신 친구네 시어머니가 무리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배추 절이는 것부터 손수하겠다 고집하신다고 말이다. 그때 나는 그게 내 얘기가 될 줄도 모르고 별생각 없이 이렇게 추측했었다.
"어르신들이 몸이 안 좋으실 때면 더더욱 무리를 해서라도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려고 하시지 않을까? 김장을 해두면, 장을 담가두면, 내가 간 후에도 아이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실 테니까 말야."
▲ 어머님은 갓과 고춧가루, 생새우 등을 추가로 넣어 양념을 만드신다. 재료들을 넣고 휘휘 저어 새끼손가락으로 간을 본 후 오케이 사인을 내시거나 소금을 더 넣거나 하는 기준이 뭔지 나는 모른다. |
ⓒ 최은경 |
어머님의 김장양념 비법을 좀 배워둬야겠다 생각을 하면서도 김장양념까지는 엄두를 못내고 도라지나물 하는 법을 배워뒀었다. 쓴맛이 없으면서도 부드러운 도라지나물이 어머님의 특기여서다. 이번에는 도라지나물을 배워두고 내년에는 김장양념을 배우면 되겠지 했더랬다. 어머님과의 남은 날들이 그 정도 여유는 허락해줄 줄 알았다. 이제 보니 언제 깨질지 모르는 금간 유리 같은 토대 위에 서 있는 일상이었다.
어머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니 냉장고에 어머님 댁에서 담아온 김장김치가 보였다. 이렇게 어머님이 가시고도 어머님이 만든 김장김치는 남아서 다음 해 5월까지 엄마의 맛을 느끼라고 하신 건가 싶어 코끝이 찡해졌다.
▲ 할머니가 김장속을 만들고 아이들이 버무리던 우리집 김장날 |
ⓒ 최혜선 |
고등학생 딸아이가 방학에 자율학습을 하러 매일 학교에 간다. 급식이 제공되는 덕분에 편하게 지내온 엄마가 매일 도시락을 싸려면 힘들겠다 싶었는지 아이는 엄마의 짐을 덜어주겠다며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밥은 소금간을 조금 해서 참기름을 둘러주세요. 반찬은 볶음김치 하나면 돼요."
그날부터 방학 한 달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있던 김치로 볶음김치를 해서 도시락에 넣어줬다. 이제 물리지 않냐고 물어도 볶음김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고, '이제 좀 지겨운가?' 생각이 들어도 막상 먹으면 매일 맛있다고 했다.
그렇게 항상 할머니의 김장김치로 볶아주다가 장례식을 치르면서 남은 김치로 이틀쯤 도시락을 싸줬더니 이건 그 맛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김치를 다 먹은 후 다시 집에 있던 김장김치로 볶음김치를 해줬더니 이 맛이라고 엄지척을 날려줬다.
이게 우리집 김치맛이라고 느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이만의 기준에는 그 아이의 17년간의 삶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삶에 매년 티나지 않게 반복되었던 할머니의 김장양념이 있었다. 어머님이 가시고 나니 공기처럼 그 자리에 있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가 미처 배워두지 못했구나 싶어 후회가 된다.
이제는 내가 새로 그 시간을 쌓아가야 할 차례가 온 것을 느낀다. 음식맛으로는 어머님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하겠지만 명절에 가족들끼리 모여 어머님을 기억하며 왁자지껄하게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써보려 한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명절의 추억을 떠올릴 때 명절과 스트레스라는 말이 어떻게 연관단어가 되는지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어머님이 계시던 시절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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