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조’ 비급여진료 관리 고삐 쥔 정부…필수의료 소생 단초될까
건강보험 재정 확보와 필수의료 보강을 목적으로 정부가 비급여 진료 관리를 위한 고삐를 쥐는 가운데 일선 전문가와 의료현장 사이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6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지난 4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2024~2028)’을 차례로 발표하고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 항목을 퇴출하는 등 비급여 관리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복지부는 비급여 시장의 의료체계 왜곡 방지와 보상 불균형 해소를 위해 ‘혼합진료’ 금지를 추진한다. 혼합진료는 비싸거나 크게 필요치 않은 비(非)중증 과잉 비급여 진료를 급여 진료에 끼워 치료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가령 백내장 수술을 할 때 비급여인 다초점렌즈 수술을 하도록 한다거나, 급여가 적용되는 물리치료를 하면서 도수치료를 유도하는 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혼합진료 확대로 백내장 치료에 들어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연간 1600억원에 달한다. 물리치료에 들어간 건강보험 진료비는 연간 64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감기에 걸렸을 때 비급여인 수액 주사를 추가로 맞거나, 교통사고 후유증에 따라 도수치료를 받는 행위 등 일상적인 진료를 모두 막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4일 건강보험 종합계획 브리핑에서 “모든 비급여 진료가 혼합진료 금지 대상은 아니고, 의료적 관점에서 적절성을 넘어서는 지나친 비급여 행위들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환자 치료를 위해 필요한 비급여를 제한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혼합진료를 제한할지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의료계 등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남용 우려가 있는 피부·미용시술 등에 대해서도 비급여관리협의체 등 별도의 체계를 구성해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 항목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의료비 급여 목록을 정비하고, ‘마늘주사’나 ‘신데렐라 주사’ 등과 같이 의료기관마다 다르게 부르는 비급여 명칭은 성분명 중심으로 표준화한다. 아울러 그간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만 비급여 진료내역을 보고하도록 했으나, 올해부터 그 대상이 의원급으로 확대돼 오는 3월 전국 모든 병·의원을 대상으로 비급여 진료내역 조사가 이뤄진다. 복지부는 이르면 올 하반기 중 비급여 진료 정보를 공개할 계획이다.
정부가 비급여 진료 관리·감독 강화에 나선 이유는 비급여 진료가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대표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비급여 진료는 의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 표준화된 기준이 없어 병원들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비급여 진료는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지불 능력과 의료기관의 수익 보전 욕구가 맞물려 의사들의 과잉 진료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키고, 필수의료 의사들의 이탈을 촉진해 지역·필수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비급여 의료서비스의 팽창으로 인한 본인부담금은 지난해 기준 30조원을 넘어섰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의 ‘국민의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혼합진료 금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17조7129억원이던 비급여 본인부담액은 매년 증가해 2021년 30조원을 돌파해 이듬해 32조3213억원까지 늘었다. 연구원 관계자는 “지속적인 재정 투입에도 건강보험 보장성이 정체돼 있고, 의료 공급자들은 수익을 위해 비급여 항목을 선택함으로써 환자의 선택권이 약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비급여 혼합진료를 막아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줄이고 국민 의료비 부담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비급여 관리 강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의료 남용을 부추기고 시장을 교란하며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비급여와 실손보험 제도를 확실하게 개혁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특히 비급여 진료가 주 수입원인 개원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입장문을 내고 “혼합진료 금지는 국민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하고, 시장 경제에 반하는 정책이다”라고 비판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인위적으로 개원 진입 장벽을 높이고, 각종 규제로 의사들을 반강제적으로 고위험·고난도·저보상 진료 영역으로 몰아넣으려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정형선 연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급여 팽창을 막고 실손보험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짚었다. 정 교수는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이 혼합진료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이 두 개만 잘 조정해도 비급여 관리에서 절반 이상의 성공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다만 비급여를 통제해 필수의료 의사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을 표했다. 그는 “비급여 관리 강화가 필수의료 부족 문제 해결에 어느 정도 기여하겠지만, 이보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나 의사 인력 추가 공급을 통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진료 행위에 있어 건강보험 보장 영역과 실손보험 보장 영역을 명확히 구분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석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도수치료 같은 의료 행위는 실손보험 시장에 완전히 맡기고, 공적 보험 범위에서 관리돼야 하는 의료 행위는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은혜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비급여 진료를 완벽히 통제하려면 건강보험 급여 진료만 해도 의료기관이 운영될 정도로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비급여 진료를 허용해놓고 통제하겠단 발상은 틀렸다. 비급여 진료 자체를 없애야 한다”면서 “비급여 진료 없이도 직원들 월급 주고 의료기관이 운영되도록 수가를 대폭 늘리고, 무분별한 국민 의료 이용을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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