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中企 탄소중립과 정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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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미국을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배경이 올해, 2024년이라는 점이다.
그가 이 소설을 쓴 1993년에는 30년 뒤면 기후변화가 세상을 결딴내리라 생각됐던 모양이다.
2024년이 된 지금, 버틀러가 묘사했던 것 같은 극단 상황까지 벌어지진 않았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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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기후 변화로 폐허가 된 미국을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의 배경이 올해, 2024년이라는 점이다. 그가 이 소설을 쓴 1993년에는 30년 뒤면 기후변화가 세상을 결딴내리라 생각됐던 모양이다. 2024년이 된 지금, 버틀러가 묘사했던 것 같은 극단 상황까지 벌어지진 않았지만 기후변화의 위험은 이미 우리 삶 속에 들어와 도사리고 있다. 이 위험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산업계에 다가온다. 하나는 이대로라면 우리 삶의 터전이 위협받으리라는 인류 공통의 문제, 또 다른 하나는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기업 생존의 문제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계는 올해 이 두 번째 고민과 맞닥뜨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CBAM은 EU가 수입 제품의 생산·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탄소국경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지만 '전환기간'인 올해부터 분기별로 탄소 배출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 등 6대 품목을 수출하는 국내 기업이 대상이다. 해당하는 국내 수출 중소기업은 1600여곳에 이른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 문제를 중소기업인들에게 물으면 "어떻게 하면 우리 공장의 탄소 배출량을 산정할 수 있나요?"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해보니 중소기업 78%가 EU의 탄소국경세에 대해 모르고 있다고 했다. EU 수출 계획이 있는 기업도 절반 이상이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EU에서 요구하는 탄소 배출량은 공장 단위가 아닌, 제품 단위로 공정 내 모든 탄소 배출량을 계산해야 한다. 직접 배출량뿐만 아니라 전력 등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전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입장에선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이라고, 규모가 영세하다고 이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젠 현안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사회공헌 정도의 영역이 아니다. 미래 세대를 얘기하기 전, 현재 기업 경영에서도 가장 우선순위로 꼽는 책무가 됐다. 게다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실현을 위해서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리나라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산업 부문 배출량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참여 없이는 탄소중립은 요원하다. 중소기업계도 의지를 가지고 있다. 중기중앙회의 조사 응답자 69%가 '기업의 환경·사회적 책임 강화 필요성에 대해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의 탄소중립 동참 의지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지원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장에선 많은 중소기업이 당장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모른 채 갈팡질팡한다.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중소벤처기업부가 모두 관련이 있지만 일원화된 창구는 아직 없다. 그동안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주로 탄소 배출량이 더 크다고 본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맞춰져 있었다. 자칫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이 국내외 친환경 규제로 피해를 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빌 게이츠는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장치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다. 새로운 혁신을 최대한 빠르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정책도 혁신이다." 이 조언은 우리 중소기업 정책에서 가장 긴요하다.
김철현 바이오중기벤처부 차장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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