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에 의존하기 싫다지만… '항우울제'에 대해 꼭 알아야할 것들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4. 2. 6.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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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항우울제에 의존하기 보다는 내 힘으로 극복하고 싶어요” 환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약물이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맞다.

우울증은 약물 치료만으로 완벽하게 치료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방식이 약만으로 어떻게 달라지겠는가. 의지력과 멘탈이 튼튼해져야 우울증에서 벗어날텐데, 과연 항우울제가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의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연구했지만 아직까지 항우울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완벽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신의학자들은 우울증이 발병하는 원인을 우리 뇌에서 정서와 욕구를 조절하는 다양한 부위, 그 중에서도 뇌간, 간뇌, 변연계와 대뇌 사이의 신경전달 이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이 바로 이러한 신경전달체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우울증 발병 원인이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부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단가아민 (monoamine) 결핍 이론’이다. (이런 명칭이 붙은 이유는 앞에서 말한 신경전달물질들이 단가아민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의 정서와 욕구 조절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신경전달물질의 결핍이라는 단순한 이론으로 다 설명되지 않고, 이것에 반하는 증거 또한 밝혀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정신의학 연구와 임상 현장에서의 객관적 관찰 결과들은 항우울제의 효과를 분명히 입증하고 있다. 시중에는 이20여 가지의 항우울제(복제약을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음)가 시판되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개발돼 1987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된 프로작(prozac, 성분명 fluoxetine)이라는 항우울제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약제로 우울증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각각의 우울증 환자에게 잘 맞는 항우울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약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과 신체적 상태, 내과 질환 여부 등을 파악해 약제를 선택한다. 똑같은 약인데도 환자마다 치료 반응과 부작용이 다르다. (1)우울증의 양상뿐만 아니라 (2)우선적으로 치료하고자하는 목표 증상을 선정해서 이에 효과적일 것으로 예상되는 약물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때 항우울제마다 차별적으로 효과를 나타내는 증상이 있으므로 (3)항우울제마다 서로 다른 특징적 효과와 (4)해당 약제의 특이한 부작용을 모두 함께 고려한 임상적 판단에 의해 처방약이 결정된다.   

각각의 항우울제가 어떻게 작동하며, 그에 따라 어떤 이점과 부작용이 있는지 우울증 환자와 그의 가족이 이해하고 있으면 정신과 치료를 받을 때 도움이 된다. 이와 연관된 정보들을 찾아보면, 그 자체가 복잡하고 서로 상충하는 것들이 많다. 약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숙지하는 건 더 어렵다. 일반인과 우울증 환자가 꼭 알아뒀으면 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간추려 설명하고자 한다. 

항우울제는 그것이 주로 작용하는 신경전달물질과 그 수용체가 무엇이냐하는 것에 따라 구분한다. 가장 대표적인 항우울제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이하 SSRI)다. 임상에서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우울제다. ‘선택적’이라고 이름 붙은 이유는, 이 계통의 항우울제가 세로토닌 외에 다른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세로토닌 기능 이상은 우울증과 연관이 깊다. 기분, 체온, 대사, 성기능, 성욕, 수면-각성 주기가 세로토닌에 의해 조절된다. 만성 스트레스는 우리 뇌에서 세로토닌의 활성도를 떨어뜨린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신경 세포 사이의 신호 전달을 담당하는 접합 부위, 즉 시냅스라고 부르는 곳에서 세로토닌 분비를 감소시키는 세로토닌 1A 수용체가 더 많이 만들어지고 결과적으로는 그곳의 세로토닌 농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기분이 우울해질 뿐 아니라 흥미와 의욕 감소, 식욕과 수면, 성욕에 변화가 생긴다. 세로토닌이 시냅스에서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서 이 부위에 세로토닌 농도가 높아지도록 만드는 것이 SSRI의 작용 기전이다.   

SSRI 중에서 가장 먼저 출시된 것은 앞에서도 잠깐 언급한 플로옥시틴, 상품명으로는 프로작이다. 이후에 서트랄린(sertraline), 패록세틴(paroxetine), 시탈로프람(citalopram), 에스시탈로프람(escitalopram), 플루복사민(fluvoxamine) 등이 개발돼 우울증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각각의 약제들은 같은 계통에 속하지만 치료 효과와 부작용 측면에서 반응이 서로 다르다. 치료 효과의 차이도 있으나 부작용 측면에서 개별 약제 간의 차별성이 두드러진다. 

플로옥시틴은 SSRI의 원조에 해당한다. 같은 계통의 다른 약제에 비해 특징적으로 식욕 저하와 항거식 작용이 있기 때문에 식욕 조절 문제가 동반된 우울증 환자에게 자주 처방된다. 파록세틴은 우울 증상 개선뿐 아니라 진정 효과를 내는 특징이 있는데, 불안함과 초조 때문에 힘들어하거나 이로 인해 수면에 어려움이 있는 환자의 치료에 이점이 있다. 서트랄린은 SSRI 속하지만 이 계통의 다른 약제와는 다르게 도파민 활성도에도 약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의욕과 흥미 감소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에스시탈로프람은 세로토닌에 대한 선택성, 다시 말해 이 약제의 작용이 이 계통의 다른 약제들보다 세로토닌에만 더 집중된다는 특징이 있다. 정신과 약물을 비롯한 다른 신체 질환 치료 약물들과 함께 복용했을 때에도 상호작용이 덜 일어나며 이로 인한 부작용 발생 위험도 적다는 강점이 있다. 우울증 치료에서 효과와 부작용을 모두 고려했을 때 임상적 효용성이 높은 약제로 평가된다.   

세로토닌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집중력과 의욕 발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이나 도파민의 활성도도 증가시키는 약제가 SSRI보다 치료 효과가 더 좋고 빠를 것으로 정신의학자들은 예상했고, 이러한 기대에 맞춰 두 가지 이상의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 항우울제가 개발됐다. 그 중 하나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차단제(Serotonin Norepinephrine Reuptake Inhibitor, SNRI)다. 

노르에피네프린은 대뇌피질에서 주의집중력과 기억 및 각성 등의 기능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우리 뇌의 청반핵이라는 부위에서 대뇌 피질로 이어지는 노르에피네프린 신경전달체계에 이상이 초래되는데, 이러한 변화가 주의력 저하, 무기력과 피로감을 일으킨다.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정서적 충격과 함께 기억력 장애가 발생하는데 이 증상은 감정 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기억 저장소인 해마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계통의 대표적인 약제로는 벤라팍신(Venlafaxine)과 이것의 유효 성분을 정제해서 만든 데스벤라팍신(desvenlafaxine)이 있다. 여러 항우울제 중 가장 최근에 개발돼 우울증 치료에 적극 활용되고 있는 것이 데스벤라팍신인데, 이 약제는 벤라팍신에 비해 효과와 부작용 측면에서 모두 개선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SSRI만큼 효과적이며, 치료 저항성 및 중증 우울증에서 효능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르에피네프린은 통증 감각을 조절하는데에도 관여하는데 이 계통에 속하는 둘록세틴(duloxetine)은 기질적인 원인이 없는 두통, 복통, 근골격계통증 등의 신체화 증상이 동반된 환자에게서 효과적이다.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에 작용하는 또다른 항우울제인 머타자핀(mirtazapine)은 NaSSA(Noradrenergic and specific serotonergic antidepressant)라고 불린다. 이 약제는 진정 작용이 강해서 불안과 불면증이 심한 우울증 환자에게 자주 처방된다. 식욕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뚜렷한데, 입맛을 잃고 체중이 현저하게 줄어든 우울증 환자 치료에 유용하다. 반대로 특징적인 부작용 또한 체중 증가인데, 다른 항우울제에 비해 그 정도가 큰 편이다.

도파민은 목표지향적 행동과 동기부여, 쾌감 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것의 생성과 분비가 감소되면 비활동성, 의욕저하, 무감동 등이 발생한다. 도파민 활성도를 증가시키는 항우울제로는 부프로피온(Bupropion)이 있다. 이 약제는 처방 용량에 따라 도파만 활성도뿐 아니라 노르에피네프린의 활성도도 높여주는 특징이 있다. SSRI처럼 신경 시냅스에서 이 두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재흡수를 억제함으로써 활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재흡수 억제제(Norepinephrine and dopamine reuptake inhibitor, NDRI)라고 부른다. 앞에서 언급한 항우울제들과는 다르게 세로토닌 활성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SSRI를 복용할 때 흔히 나타나는 성기능과 관련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보티오세틴(vortioxetine)은 다양한 여러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여 멀티모달 (multimodal) 항우울제라 불린다. 다른 약제에 비해 성기능장애 및 체중 증가 부작용이 적고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는 우울증 환자에게 처방하는 사례가 많다. 아고멜라틴 (agomelatine)은 SSRI와 멜라토닌이 함께 포함된 항우울제다. 멜라토닌 수용체에도 작용하기 때문에 불면증과 같은 일주기 장애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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